|詩| 찬물 세수*

서 량 2011. 7. 26. 20:11

 

쭈그리고 앉아서 대야에 고개를 푹 박고 세수를 할까 하는데 냄새 좋은 비누로 콧잔등을 박박 문지르고 물이 입에 닿으면 푸푸 소리를 내야겠어 펌프 물을 모아두는 네모난 시멘트 틀에 사람 얼굴만한 바가지 하나 둥둥 떠 있어 그 옆으로 앵두나무 가는 가지들이 비단실처럼 늘어져 있고 새 소리 요란한 마당이다 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무슨 시위를 벌이는 거에요 용기를 내라고 부추기는 내막으로 간주하시면 대략 틀림이 없습니다 누구한테 물러가라고 소리치는 거 같다 천둥 벼락이 치고 있어 세수를 마치고 왈칵 버리는 찬물이 캄캄한 지하로 떨어지는 중력의 힘에 나도 합세할까 하는데 얼마든지 좋아요 이렇게 서늘한 여름 아침에는요

 

 

© 서 량 201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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