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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얘기| 양말 사건

내 환자 백인 남자 케니가 부랑자 수용소에서 살았는데 여자 부랑자 멜리사를 좋아해서 수용소 안에서 서로 부부행세를 했대. 둘 다 성격이 강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는데 하루는 멜리사가 케니에게 "여보, 내 양말이 어디 가고 없는데 내 양말 좀 찾아 줘." 했대. 마침 그때 케니는 전화를 걸고 있었거든. "응, 그래 알았어!" 하면서. 멜리사는 케니가 전화를 끝내기를 기다리며 서있었는데 케니가 수화기를 놓고 훌쩍 자리를 뜨는 거라. 멜리사 왈, "여보, 왜 내가 부탁한 걸 안 들어주는 거야?" 한 거지. "무슨 부탁을 했는데?" "당신이 아까 응, 알았어! 해 놓고 그 사이에 내가 뭐랬는지 잊어버렸어!?" 케니 왈, "에이, 그러지 말고 다시 말해 주면 되잖아!" 그랬더니 글쎄 멜리사는 분이 하늘까지 치..

환자 얘기 2007.09.01

|컬럼| 16. 아픔과 정열의 차이

‘아프다’는 사전에 ‘고통(苦痛)스럽다’로 나와있고 옥편에는 고(苦)는 ‘쓸 고’ 또는 ‘괴로울 고’로 풀이돼 있다. 좀 우기자면 ‘아프다’와 ‘괴롭다’는 같은 뜻이다. 전자가 육체적이고 후자는 정신적이라고 분별할 수 있겠지만 육체와 정신은 늘 상통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그놈이 그놈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고대 라틴어로 ‘passus’는 ‘고통’이라는 뜻이었는데, 바로 이 말에서 ‘passion (정열)’이라는 단어가 태어났다. 정열은 아픔에서 생긴다. 정열은 괴로움이면서 그 맛이 쓰다. 희랍어에서도 ‘pathos’는 고통이라는 뜻이었는데 이 말은 스펠링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지금껏 현대영어에 ‘비애’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pathos’에서 ‘pathology (병리학)’이라는 의학용어마저 파생됐다..

|詩| 홈디포(Home Depot) 가는 길**

엊그제 토요일에 홈디포에 전구며 못이며 이름도 모르는 연장을 사러 가다가 난생 처음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대낮에 들었습니다 나무와 숲이 음산하게 우거진 길이었지요 귀뚜라미는 가을 밤에만 우는 것으로 알았는데 귀뚜라미는 밑도 끝도 없이 고향 생각이 나게 하지요 그런 귀뚜라미가 벌건 늦여름 햇볕이 쨍쨍한 대낮에 우는 거에요 귀뚜라미건 사람이건 우는 거와 노래를 부르는 거가 대동소이하다는 결론을 내려도 좋아요 괜찮아요 귀뚜라미에 대한 선입관을 고치기로 했습니다 귀뚜라미도 매미처럼 대낮에도 운다 이겁니다 잘은 모르지만 비 내리는 새벽에는 아마 울지 않을 거라고요 근데 큰 확신은 없어요 귀뚜라미는 낮에도 울고 밤에도 울고 하니 귀뚜라미는 잠은 언제 자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새벽에 자나 혹시 전혀 잠을 자지 않는 ..

2007.08.31

|컬럼| 15. 당신이라는 인칭대명사

네이버 사전은 ‘당신(當身)’이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1 듣는 이를 가리키는 이인칭 대명사. ‘하오’할 자리에 쓴다. 2 부부 사이에서 상대편을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3 맞서 싸울 때 상대편을 낮잡아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4 ‘자기’를 아주 높여 이르는 말.」 ‘어머니 살아 생전에 당신께서…’ 의 '당신'은 4번 용법으로 제 3자를 지칭한다. 그러나 나머지 셋은 모두 이인칭 용법으로 의미상 서로 대단한 이질감을 풍기고 있다. ‘당신도 성공할 수 있다’라는 책 제목에서 ‘당신’은 1번에 해당한다. 차분하고 공식적인 어법이다. 2번에서처럼 여보, 당신 하는 말투는 부부간의 다정한 호칭이다. 그러나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날 길거리에서 중년 남자들이 시비가 붙었을 때 한쪽이 ‘당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