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479

|컬럼| 306. 누가 누구를 속이나?

'hallucinate (환각을 일으키다, 환각에 빠지다)'는 17세기 중반쯤 통용되던 라틴어로서 마음과 생각이 오락가락하고 횡설수설하는 말투를 뜻했다. 'hallucinate'는 그보다 반백 년 앞선 17세기 초에 고대영어에서 속인다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쓰이지 않는 용법이지만 마치 공룡의 화석처럼 말 속 깊은 곳에 우람한 뼈대가 묻혀있다. 15세기경 라틴어에 등장한 'delude (착각하다, 망상에 빠지다)' 또한 처음에는 속인다는 뜻이었다. 환각도 착각도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참한 결론이 나온다. 환각이나 착각의 속임수에 대한 질문이 터진다. 속이다니! 누가 누구를 속인다는 말인가. 지금껏 나는 내 환자들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례를 무수히 보아왔다. 환청에 시달리고 망상증에 빠진 환자들은..

|컬럼| 303. 감정의 역동성

주말 아침에 한 정신과의사가 티비 뉴스 프로에서 우울증에 대하여 말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는 새로 개발된 약을 추천하면서 그 약이 우울증 외에도 불안증세가 있으면 그것 마저 곁들여서 잘 처리해준다고 언급한다. 그 순간 셰익스피어가 햄릿 입을 통해서 한 말,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을 이상스럽게 연상하면서 움찔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는 그 유명한 구절을 나는 그때 굳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고 직역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있다, 없다' 하는 흑백논리를 추구하는 그 유능해 뵈는 백인의사에게 거부반응이 일어났던 것이다. 사람 마음이란 이를테면 한 여자가 임신이다, 아니다 할 때처럼 우울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