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50. 진짜가 될 때까지 속여라

서 량 2019. 11. 18. 09:11

 

직장 동료와 수다를 떨다가 ‘언행일치’를 어떻게 번역할지 몰라 말이 막혔다. 이중언어 사이를 왕래하다 보면 와이파이가 끊어지듯 영어의 흐름이 졸지에 끊어지고 한국말이 쓱 나타나면서 의식을 차단할 때가 종종 있다.

 

나중에야 마음에 좀 들까 말까 하는 번역이 떠올랐다. ‘Put your money where your mouth is’ – ‘자네는 행동을 말에 맞추어야 해’ -- 이때 ‘money’는 사람의 행동을 부추기는 동력이고 ‘mouth’는 물론 말(言)이다.

 

‘언행일치’에 해당하는 표현이 또 생각났다. ‘Practice what you preach’. – 직역으로, ‘네가 설교하는 걸 실천에 옮겨라’. 이 금언에는 우리가 남에게 설교하는 건 쉽지만 그걸 몸소 실천에 옮긴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뉘앙스가 묻어있다. 19세기 말경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에 처음으로 쓰인 ‘Talk is cheap, 말은 값싸다’ 또한 비슷한 의미로 잘 쓰인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는 우리 격언과 뜻이 반대다.

 

‘Practice what you preach’를 ‘(너의) 언행을 일치시켜라’로 의역을 하면 더 자연스럽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 “너나 잘 하세요!” 출소하는 금자에게 두부처럼 하얗게 살라는 훈시를 하며 건네 주는 전도사의 두부를 냉정히 거부하며 하는 사이다 발언이다.

 

얼마 전 그룹 세션을 하다가 “Actions speak louder than words!”이라는 말이 나왔다.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말해 보라 했더니, 한 환자 왈, 움직이면서 말할 때는 조용히 말하라는 것이란다. ‘louder’는 목소리의 크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 후,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하다”며 나는 한껏 언성을 높였다. 이 말은 1856년에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인들을 감동시킨 말이기도 하다. 

 

2019년 11월에 ‘언행일치’ 분야에서 낙제점을 받고 있는 한 정치인의 행태를 살펴본다. 말과 행동이 일관성 있게 어긋나는 사람을 우리는 사기(詐欺)꾼이라 부른다. 만약 당신이 묵직한 한자어에 부담을 느끼는 체질이라면 같은 뜻으로 무게가 좀 덜 나가게시리 거짓말쟁이라 해도 무방하겠지. 아니면 다시 “Talk is cheap!”은 어떠냐.

 

영화 감독이 한 컷을 찍을 때 “Action!” 하며 소리치는 습관이 처음 시작된 것이 1923년. 이때 ‘action’은 어떤 목적의식이 있는 일련의 행동을 의미한다. 이 말은 명사로 쓰이지만 ‘act’는 명사와 동사로 두루두루 사용된다. ‘act’에는 행동한다는 뜻에다 ‘연기하다, 가식을 부리다’ 같은 묘한 의미도 있다. 연극에서 1막, 2막 할 때도 ‘act 1, act 2’ 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에는 가식적인 요소가 숨어있다. ‘Fake it till you make it’이라는 속언도 마찬가지다. – ‘진짜가 될 때까지 속여라’ -- 이 충고는 표정을 관리하거나 벅찬 감정을 통제하기 위한 소시민적 수법이다. 궁지에 몰린 범죄 혐의자의 길이 결코 아니다.

 

날씨가 을씨년스러워지는 요즈음,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5막 5장에 나오는 독백을 상기한다. 음산한 배경음악이 들리는 듯하다. 맥베스의 독백은 이렇게 울려온다.

 

“인생은 한갓 걸어다니는 그림자, 불쌍한 연기자, 무대 위의 자기 시간을 뽐내고 안달하네. 그리고나서 더 이상은 들리지 않네. 인생은 바보천치가 들려주는 이야기, 소리와 분노로 가득하지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네. “

 

© 서 량 2019.11.17 

--- 뉴욕 중앙일보 2019년 11월 20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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