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뉴욕 의료인들이 고초를 겪고 있다. 약사, 슈퍼마켓 종업원, 배달업자, 의사같은 직업은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직종이다. 차가 몇 대 안 보이는 유령 도시의 고속도로를 나 또한 매일 질주한다.
병동 직원들은 마스크를 쓰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환자들의 민낯이 편안해 보인다. 한 직원이 부럽다는 듯이 투덜댄다. “They are not anxious at all” - 저들은 도무지 걱정을 하지 않네요.
‘anxiety(걱정, 두려움)’, ‘anguish(고민)’, ‘anger(분노)’처럼 ‘앵~’으로 시작되는 말은 전인도유럽어에서 좁고, 답답하고, 옥죄인다는 뜻이었다. 노여워서 토라진다는 뜻의 ‘앵돌아지다’라는 우리말도 ‘앵’자 돌림이라고 당신이 주장한다면 그 또한 백 번 맞는 말이다.
티브이에서 패닉 상태에 빠져 소리치는 뉴요커를 본다. 이들은 남들에게 마음 놓고 공포심을 분출하고 있다. 자기 말에 도취되어 남들과 자신의 무섬증을 부채질하는 냄새를 물씬 풍기면서. 이토록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것이 패닉의 마력이다.
‘panic’은 목신(牧神)을 지칭하는 고대 희랍어 ‘Pan’에서 유래했다. 사람 얼굴에 염소의 뿔과 다리를 가진 흉측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목신! 햇살이 씻김굿 하는 무당처럼 넘실넘실 춤을 추는 벌판에 홀로 선 목동을 상상해 보시라. 원시의 공포가 엄습하지 않는가?
걱정, 두려움이나 공포를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의지력이 강한 사람들이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지만, 무엇이든 알면 삶에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진리다. 아는 것이 힘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은 어떤가. 솔로몬도 전도서에서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한다고 했다. 사실, 아는 것은 슬픔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Don’t worry!” 하며 직원들에게 힘주어 말한다.
‘worry’는 13세기 고대영어로 다른 동물의 목을 물고 흔들어 죽이거나 해치는 (개나 늑대가 그렇듯이) 행동을 뜻했다. 14세기에 남을 괴롭히고 짜증나게 한다는 의미로 바뀌었고, 19세기 중엽에 혼자서 하는 근심이나 걱정이라는 뜻으로 변했다.
‘worry’가 타동사에서 자동사로 바뀌는데 600 년이나 걸렸다. 타동사는 동물적이고 자동사는 인간적이다. 아니지. 아직도 당신과 내 마음에는 자신의 근심 걱정이 남 때문이라는 생각의 그림자가 어른대고 있지.
어릴 적 할머니가 강아지를 “워리~” 하며 부르시던 기억이 난다. 강아지를 해피, 메리라 부르기 전 시절에 우리 선조들이 자주 쓰던 개 이름이 워리였다. 어원학자 송근원 교수에 의하면 오천 년 전 수메르에서 개를 ‘우르(ur)’라 불렀는데 우리 선조들이 개를 ‘워리’라 한 것과 발음이 비슷하고 ‘워리’의 ‘리’는 이리(狼)의 ‘리’와 같다. (2019)
“Don’t worry!” 하며 나는 늑대처럼 공격적으로 말한다. 가슴이 답답할 때 당신은 차분한 심호흡으로 기도(氣道)를 여유롭게 넓혀 줄 것이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의 나른한 멜로디를 들으면서 공포심을 무마하는 것도 좋다. ‘panic’은 신화에 불과하다. 그리고 ‘워리’는 성질 고분고분한 강아지 이름이라는 것을 잊지 말도록. 걱정도 강아지 다루듯이 해야 한다.
이런 내 애정 어린 잔소리는 마스크를 써서 무증상 보균자의 전염성을 막아내고 멀리하고 몸의 면역을 높이는 식단과 생활습관을 잘 유지하는 당신의 세심함을 전제로 한다.
© 서 량 2020.04.05
--- 뉴욕 중앙일보 2020년 4월 8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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