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칸나*
조성자
땅으로의 긴 여행은 언제부터였는지
빙벽을 뚫고 백 년 만에 남하하고 있다는 폭설
공룡의 무리처럼 행군하고 있다는데
그래서 막을 자는 없다는데
저 돌진은 무슨 소명을 안고 있는 걸까
이마에 닿자마자 흘러내리는 눈
전언을 등에 메고 달려와
자국도 없이 사라지는데
나는 아직 당신을 해독하지 못했다
들을 귀 없어 소식을 얻지 못했다
한 때 당신을 유혹해 배를 가르고 싶었다
수염을 뽑아내고 얼어붙은 턱 밑에 칸나를 심고 싶었다
겨울은 천상의 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시기
소리의 폭풍 속으로 붉은 칸나를 피워내고 싶었다
칸나의 형상으로
칸나의 색채로
풀어내고 싶은 몇 가지 의문이 있었다
*조지아 오키페의 그림 제목
「시와시」 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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