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붉은 칸나* / 조성자

서 량 2010. 8. 10. 07:18

 

붉은 칸나*

 

                       조성자

 

 

땅으로의 긴 여행은 언제부터였는지

빙벽을 뚫고 백 년 만에 남하하고 있다는 폭설

공룡의 무리처럼 행군하고 있다는데

그래서 막을 자는 없다는데

 

저 돌진은 무슨 소명을 안고 있는 걸까

 

이마에 닿자마자 흘러내리는 눈

전언을 등에 메고 달려와

자국도 없이 사라지는데

 

나는 아직 당신을 해독하지 못했다

들을 귀 없어 소식을 얻지 못했다 

 

한 때 당신을 유혹해 배를 가르고 싶었다

수염을 뽑아내고 얼어붙은 턱 밑에 칸나를 심고 싶었다

 

겨울은 천상의 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시기

소리의 폭풍 속으로 붉은 칸나를 피워내고 싶었다

 

칸나의 형상으로

칸나의 색채로

풀어내고 싶은 몇 가지 의문이 있었다

 

*조지아 오키페의 그림 제목

 

「시와시」 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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