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사과 과잉 당신의 하드 드라이브 용량은 얼마나 되나요 퇴근길에 내 앞뒤로 차량들이 버글거렸다 선량한 운전수들끼리 충돌해서 응급차가 달려오고 선량한 경찰들이 뒤늦게 도착하고 신(神)이 사랑의 가래침을 듬뿍 뱉어 놓은 금단의 열매가 경련하는 당신의 무의식 이차선 도로에 내 유년기 잊혀.. 詩 2007.11.06
|詩| 갈증에 관한 詩 詩를 주물럭거리다 지쳐 한 시간만 자고 일어나야지 하다가 내쳐 잤지 세 시간쯤 지나 벌떡 일어나 목이 샌드페이퍼처럼 칼칼해서 물 마시고 의자에 앉아 꼼짝달싹하지 않는 벽을 노려본다 밤이면 밤마다 내 詩의 기분을 풀어주는 창 밖의 달 처음에 복숭아 빛이었다가 나중에 샛노란 국화 빛으로 詩 .. 詩 2007.11.02
|詩| 가을에 하는 잎새 관찰 여름 내내 산등성이를 넘나드는 숱한 나무들을 눈 여겨 봤지. 그놈이 그놈이다 싶게 새파란 놈들. 버르장머리 없는 청춘. 단일민족, 단일민족, 하면서 우리는 한 통속이라며 향토예비군복을 입은 멀쩡한 민간인들이 한여름 내내 산에서 이마에 띠를 두르고 주먹질하는 거 있지. 10월 중순께 접어들면서.. 詩 2007.11.01
|詩| 은빛 진공소제기 서재에서 침실로 통하는 마루를 걸어가다가 마루바닥에 거미 같기도 하고 이상하게 시꺼먼 물체가 보이길래 주춤했지 귀뚜라미 한 마리 조용히 죽어 있었다 죽은 생물은 얼른 알 수 있어요 엊그제 죽은 꽃을 당신이 금방 알아내 듯 나 자세히 몰라 귀뚜라미 다리 하나가 기억자로 보기 좋게 꺾어져서 .. 詩 2007.10.27
|詩| DVD 튼튼한 의자 다리처럼 그렇게 반듯하게 모가 나게 빳빳하게 힘차게 물렁물렁한 대지에 버티고 서느니보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굴러가는 크게 둥글지 않게 바삭바삭 오그라진 낙엽들처럼 그렇게 몸 바짝 가까이 우리들 서로들 함께 몰켜 살기, 가을에 와르르 흩어지는 바람이 싫어요 바람처럼 산만한.. 詩 2007.10.26
|詩| 여행길 기어이 내가 당신과 부딪치는 예감이라면 흥흥 콧노래라도 부르면서 슬쩍 떠나고 싶은데 내일쯤 깊은 밤 가을 그믐달 슬며시 스러지는 은빛처럼 흥건한 마음 변두리로 창백한 얼굴 잊혀진 당신을 찾아 헤매는 천상의 기류였다 나는 햇살이 거무죽죽한 날에도 화끈한 흙의 실체를 위하여 낙엽이 알몸.. 詩 2007.10.22
|詩| 화려한 거짓말 자세히 알 수 없는 타인을 위하여 나, 오늘 또 거짓말을 했습니다 귀뚜라미 더듬이 같은 내 일거수일투족이 고단하면서도 몰래 화려한 일상이라는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을 했지요 이것은 휘영청 달밤에만 떠오르는 느낌입니다 느낌이 분명치 않은 그런 눅눅한 느낌이요 © 서 량 2007.09.30 詩 2007.10.15
|詩| 유효기간 수도꼭지가 콜록콜록 옆구리로 기침하면서 수압을 다스리고 있다 터질 듯한 충동에 맞붙어 똑, 똑 떨어지는 땀방울 이슬방울, 뿌듯한 물방울들 수도꼭지는 진작부터 짠 물결 넘실대는 바다가 그리웠다 © 서 량 2007.07.10 詩 2007.10.13
|詩| 복식호흡에 대한 서정 횡격막이 폐를 들썩이는 만큼 갓난아기 호흡법으로 배가 볼록볼록 나왔다 들어갔다 해야 해. 당신도 청순한 가을을 마시고 싶다면야 모름지기 아랫배가 초생달 모습으로 들쑥날쑥 해야 해. 독수리처럼 화급하게 도마뱀처럼 음흉하게 잊혀지는 사랑처럼 질박하게 그렇게 은밀하게 숨을 쉬어야 해. 팔.. 詩 2007.10.06
|詩| 소통** 가을에 나무들이 심심해서 너무나 심심해서 엉덩이를 흔들다 보면 나무들 가녀린 머리칼도 덩달아 흔들린다 당연하지 정말이다 가을에는 구름 땅 굴뚝 아스팔트도 하다못해 당신의 연심도 모조리 흔들린다니까 주홍색 앞가슴에 눈이 부리부리한 이름 모를 새 몇 마리 내 앞마당 허공에.. 詩 2007.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