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 공포의 대상과 맞붙는 양키들

서 량 2007. 8. 22. 12:14

 공포의 대상과 맞붙는 양키들 심하게 웃는다는 뜻으로 우리말에 ‘배꼽을 잡고 웃는다’는 표현이 있다. 배꼽을 잡는다는 것은 배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걱정하는 심리상태다. 우리 모두가 아늑한 모태에서 태아로 지냈던 시절에 생명의 원천이던 탯줄이 닿은 부분, 즉 배꼽이 몸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영어로는 같은 표현을 ‘laugh one's head off’라 한다. 직역을 하면 ‘머리가 떨어져 나가게 웃는다’는 뜻. 우리는 배꼽이 몸에서 일탈하는 것을 걱정하는 반면에 양키들은 (머리가 떨어져서) 머리가 없이 웃는다는 점이 좋은 대조를 이룬다. 우리 생각으로는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발상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들이 죽음을 불사하며 웃는다는 사고방식을 현명한 당신은 얼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지만 양키들은 머리를 잡고 웃지는 않는다.


 이토록 죽음을 불사하는 양키식 언어감각의 예는 너무나 많다. 밤새도록 사랑을 했다는 표현을 슬랭으로 ‘f___ one’s brains out’라 한다. 방사를 거듭할수록 남녀의 뇌가 두개골 밖으로 줄줄 흘러나오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공포영화가 아닌 이상 어찌 이런 표현을 한단 말인가. 비슷한 예로 ‘yell one’s guts out’는 너무 배에다 힘을 줘서 내장이 밖으로 튀어 나오도록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는 뜻이다.


 ‘몹시 슬퍼하다’ 혹은 ‘속을 썩히다’라는 뜻으로 ‘eat one’s heart out’라는 관용어가 있는데 직역하면 ‘자기의 심장을 꺼내 먹다’가 된다. 이 또한 해괴망측하고 피비린내가 나는 표현이다. 슬픔이 지나친 상황에서 우리가 조용히 앉아서 위장계통을 상하고 있을 때 양키들은 유혈이 낭자하게 심장을 꺼내 먹는 모양이다.


 다 아는 말이지만 우리말 표현에는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이 내포된 말이 즐비하다. 우스워 죽겠다, 좋아 죽겠다, 보고싶어 죽겠다, 심심해 죽겠다 하는 말들이 그 좋은 예. 이 때 ‘죽겠다’는 표현은 죽음을 불사하는 표현이 아니라 죽을까 걱정이 된다는 의미다. 자고로 우리는 너무 배가 고프면 굶어 죽는 것을 우려해서 ‘배고파 죽겠다’ 한다. 우리말에는 걱정이 숨어 있고 영어에는 광적인 도전의식이 돌출하고 있다. 영어에 죽는다는 말이 들어가는 가장 흔한 관용어로 ‘알고 싶어 죽겠어요’ 라는 표현이 있는데 ‘I am dying to know’라 한다. 직역을 하자면 ‘알기 위하여 죽는 중이에요’. 이 표현 또한 참으로 담담한 발언이면서 눈곱만치도 목숨에 대한 존엄성이 보이지 않는다.


 보라. 이 뻔뻔스러운 양키들을. 머리가 떨어져 나가도, 뇌가 빠져나가도, 내장이 쏟아져 나와도, 줄곧 씩씩하게 웃거나 사랑하거나 소리를 치겠다는 사생결단의 집념과 기백을. 그리고 다시 살펴볼지어다. 우리가 우스워 죽겠고, 보고싶어 죽겠고, 심심해 죽겠다 싶을 때 우리 속에 내재하는 저 조심스러운 생명에 대한 애착심을.


 오늘 이런 생각을 했다. 공포의 대상과 맞붙어 싸워서 사생결판을 내고 싶어하는 양키들의 심리와 공포의 대상을 피하려고 안달복달하는 우리들의 의식상태가 사실 똑 같은 인간의 심성에 나왔다면 어쩔 것인가.


© 서 량 2006.05.28
-- 뉴욕중앙일보 2006년 5월 31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