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56. 뱀 이야기

서 량 2012. 4. 30. 08:35

제우스의 사자(使者)인 희랍 신화의 헤르메스(Hermes)는 평소에 늘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그 지팡이 꼭대기에는 비둘기의 날개가 양쪽으로 펼쳐져 있고 그 밑으로 뱀 두 마리가 꼬불꼬불 타고 오르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내 옛날 한국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 칼라에 달고 다니던 배지가 바로 헤르메스의 지팡이에 새겨진 'Caduceus' 였다. 막대기와 날개와 뱀이 합쳐진 군의관 배지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헤르메스는 또 저승사자 역할도 했다. 그는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을 지도하는 친절하고 발 빠른 관광 가이드였다. 죽은 이들의 영혼을 인도하는 이를테면 일종의 정신과 의사로 군림한 것이다.

 

로마 신화에서 헤르메스에 해당하는 신은 머큐리(Mercury)였다. 머큐리는 체온계의 빨간 수은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태양에 가장 가까운 별, 수성(水星)을 지칭하는 만큼 주피터에게 심하게 열을 받았던 위치에 있었던 모양이다.

 

뱀은 ''로 기어 다닌다고 뱀이라고 한다. 갓난아이가 생후 몇 달 후 기어가는 동작을 '배밀이'라 하듯이. 성경은 가벼운 고대영어 'snake'보다 묵직한 라틴어의 권위를 선호해서 'serpent'라 기록했는데 둘 다 똑같이 '기어가다'는 뜻이었다. 배밀이만 하는 주제에 권위는 무슨.

 

간교한 뱀이 이브를 유혹하기로 금단의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했더니 이브가 그 말에 꼴깍 넘어가서 과일을 날름 따먹고 아담도 덩달아 먹으니 그들의 시력이 졸지에 좋아진 결과 평생 처음으로 자신을 볼 줄 아는 지혜가 생긴 나머지 자기의 벌거벗은 모습이 부끄러워 나뭇잎으로 얼른 아랫도리를 가렸다 했거늘.

 

그 에덴 동산의 뱀이 악마였다는 소문조차 있다. 반면에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며 당신을 위로한 마태(Mathew)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양순해라!"라 가르쳤다고 대서특필을 했다. (마태복음10 16) 배밀이를 교통 수단으로 삼는 뱀은 아주 교활한 존재인 동시에 신중과 지혜의 상징이라 성경은 설파한다.

 

기원 전 약 5,000년경에 중동지역 메소포타미아의 청동기 시절에 수메르(Sumer)족이 살았다 한다. 그 까마득한 시대에 이미 날개와 뱀과 지팡이를 합친 아이콘이 있었다는 고고학적 기록이 우리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한다.

 

고대인들은 뱀을 숭상했다. 그들은 뱀들이 겨울에 땅 속에서 동면하고 봄이면 허물을 벗으면서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기 때문에 마치도 영생을 향유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의학의 상징 'caduceus' (커듀시어스)16세기 말경 그 뜻을 '사자(使者)의 지팡이'라고 풀이했다. 이 말은 전인도 유럽어로 '크게 찬양하다'라는 뜻이었다. 현대어의 '할렐루야'에 해당된다. 원시인들이 지팡이로 땅을 치며 무언가 소리치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한 마리의 뱀도 정녕 무섭거늘 의학을 상징하는 지혜의 지팡이를 두 마리의 뱀이 감싸고 있다니. 이것은 혹여 음양론의 결과일까. 해와 달, 밤과 낮, 남과 여, 아담과 이브, 신과 악마처럼 인류의 핏속에 잠재해 온 균형감각의 발로였을까.   

 

뱀의 지혜를 대변하는 의사들의 지혜란 무엇인지 당신은 어서 말해 다오. 정신분석에 의하면 뱀이란 어쩔 수 없는 남성의 상징이었던 사실을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근래에 생긴 한국의 '꽃뱀'은 또 어쩔 것인가.

 

노자는 기원 전 550년경 도덕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해박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 힘주어 말했다. 아침 저녁으로 구글을 검색하는 당신에게 지식은 이제 아무런 가치가 없다. 차라리 창세기와 마태복음을 누비는 뱀의 지혜가 절실하게 그리울 뿐이다.

 

© 서 량 2012.04.29

-- 뉴욕중앙일보 2012 5 2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