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36. 새빨간 거짓말

서 량 2011. 7. 11. 07:57

지난 5월에 맨해튼 호텔 여종업원 강간 혐의로 전 IMF 수석 도미니크 스트라우스-칸이 체포됐던 뉴스는 큰 충격이었다. 요사이 그 종업원의 행실이 대단히 수상했다는 사실과 그녀가 일을 치른 후 돈을 받지 못해서 그를 성추행으로 고소했다는 주장이 다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법정은 그녀가 진술한 많은 거짓말을 대서특필했다.

 

'거짓말''거죽(: 表皮)'이 변한 단어라고 우리말 고어사전은 풀이한다. 속 생각을 감추고 거죽으로 하는 겉치레 말이 즉 거짓말인 것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거짓말을 남긴다 하면 심한 소리일까.

 

호텔의 잡역부가 법원에서 한 거짓말은 위증(僞證)이라 한다. '거짓 위()' '사람 인'변에 '할 위'로 이루어진 문자다. 이쯤 해서 우리가 하는 거짓말이란 '사람을 위하여' 하는 발언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실로 거짓말이란 자연과학이 아닌 인문 분야에 속해야 마땅한 일이로다.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다. 선의로 하는 거짓말을 뜻하는 영어의 'white lie(흰 거짓말)'라는 관용어만 봐도 그렇다. 우리말의 '새빨간 거짓말'은 또 어떤가.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어 숨김이 없다는 뜻의 '적나라(赤裸裸)'라는 표현이 그러하듯 빨가벗은 진실은 빨개 보이는 법이다. 새빨간 거짓말은 꾸밈없는 거짓말이다. 이것은 양키들의 'barefaced lie' ,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 거짓말'이라는 개념과 흡족하게 상통한다.

 

이렇듯 진실과 허위는 서로를 보완하고 있다. 미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여섯 살 때 앞뜰의 벚나무를 손도끼로 찍어 죽게 한 후 누가 한 짓이냐고 물어보는 아버지에게 "저는 거짓말을 하지 못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라고 정직하게 고백했다는 일화를 기억하는가. Parson Weems(1759-1825)라는 당대의 유명작가가 쓴 <워싱턴의 생애>에 나온 그 감명 깊은 사연은 나중에 조작된 기록이었음이 밝혀졌다. 진실과 정직의 중요성에 대한 강도 높은 교훈을 주기 위하여 새빨간 거짓말까지 하는 교육자들의 마음가짐은 이다지도 안쓰럽다.

 

당신은 또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첫 부분을 기억할 것이다. 주인공 장발장이 신부 집에서 은촛대를 훔쳐 도망치다가 경찰에게 잡혀 왔을 때, 신부는 그 귀중품을 그가 훔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에게 선물로 줬다고 에두른다. 신부의 사려 깊은 허위보고는 장발장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크나큰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근래에 한국 티브이 드라마 몇 편을 듬성듬성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얘기 줄거리의 공통점에 깜짝 놀랐다. 내 관심을 끈 드라마 제목은 ① 내게 거짓말을 해봐 ② 동안미녀 ③ 미스 리플리. 셋 다 거짓말을 하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여러 각도에서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①은 결혼한 친구에게 부러움을 느낀 나머지 굴지의 미혼 재벌남과 자기가 결혼을 했다는 거짓말을 하는 사연으로 시작했고, ②는 얼굴이 동안(童顔)으로 생긴 34살의 여자 의상디자이너가 나이를 25살로 속인 얘기였고, ③은 얼마 전 저명인사들이 무더기로 신문 사회면에 물의를 일으켰던 '학력 조작' 사태가 그 테마였다.

 

일찍이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일단 설정해 놓은 거짓 상황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울이는 부단한 노력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선의의 거짓말인 'white lie'는 애타주의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기적인 각도에서 감행하는 거짓말은 참으로 고단한 인생이렸다. 상기의 ①과 ②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데 대하여 부러워 하기를 잘하는 당신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 서 량 2011.07.10

-- 뉴욕중앙일보 2011 7 13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