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에 맨해튼 호텔 여종업원 강간 혐의로 전 IMF 수석 도미니크 스트라우스-칸이 체포됐던 뉴스는 큰 충격이었다. 요사이 그 종업원의 행실이 대단히 수상했다는 사실과 그녀가 일을 치른 후 돈을 받지 못해서 그를 성추행으로 고소했다는 주장이 다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법정은 그녀가 진술한 많은 거짓말을 대서특필했다.
'거짓말'은 '거죽(겉: 表皮)말'이 변한 단어라고 우리말 고어사전은 풀이한다. 속 생각을 감추고 거죽으로 하는 겉치레 말이 즉 거짓말인 것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거짓말을 남긴다 하면 심한 소리일까.
호텔의 잡역부가 법원에서 한 거짓말은 위증(僞證)이라 한다. '거짓 위(僞)'는 '사람 인'변에 '할 위'로 이루어진 문자다. 이쯤 해서 우리가 하는 거짓말이란 '사람을 위하여' 하는 발언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실로 거짓말이란 자연과학이 아닌 인문 분야에 속해야 마땅한 일이로다.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다. 선의로 하는 거짓말을 뜻하는 영어의 'white lie(흰 거짓말)'라는 관용어만 봐도 그렇다. 우리말의 '새빨간 거짓말'은 또 어떤가.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어 숨김이 없다는 뜻의 '적나라(赤裸裸)'라는 표현이 그러하듯 빨가벗은 진실은 빨개 보이는 법이다. 새빨간 거짓말은 꾸밈없는 거짓말이다. 이것은 양키들의 'barefaced lie' 즉,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 거짓말'이라는 개념과 흡족하게 상통한다.
이렇듯 진실과 허위는 서로를 보완하고 있다. 미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여섯 살 때 앞뜰의 벚나무를 손도끼로 찍어 죽게 한 후 누가 한 짓이냐고 물어보는 아버지에게 "저는 거짓말을 하지 못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라고 정직하게 고백했다는 일화를 기억하는가. Parson Weems(1759-1825)라는 당대의 유명작가가 쓴 <워싱턴의 생애>에 나온 그 감명 깊은 사연은 나중에 조작된 기록이었음이 밝혀졌다. 진실과 정직의 중요성에 대한 강도 높은 교훈을 주기 위하여 새빨간 거짓말까지 하는 교육자들의 마음가짐은 이다지도 안쓰럽다.
당신은 또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첫 부분을 기억할 것이다. 주인공 장발장이 신부 집에서 은촛대를 훔쳐 도망치다가 경찰에게 잡혀 왔을 때, 신부는 그 귀중품을 그가 훔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에게 선물로 줬다고 에두른다. 신부의 사려 깊은 허위보고는 장발장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크나큰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근래에 한국 티브이 드라마 몇 편을 듬성듬성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얘기 줄거리의 공통점에 깜짝 놀랐다. 내 관심을 끈 드라마 제목은 ① 내게 거짓말을 해봐 ② 동안미녀 ③ 미스 리플리. 셋 다 거짓말을 하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여러 각도에서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①은 결혼한 친구에게 부러움을 느낀 나머지 굴지의 미혼 재벌남과 자기가 결혼을 했다는 거짓말을 하는 사연으로 시작했고, ②는 얼굴이 동안(童顔)으로 생긴 34살의 여자 의상디자이너가 나이를 25살로 속인 얘기였고, ③은 얼마 전 저명인사들이 무더기로 신문 사회면에 물의를 일으켰던 '학력 조작' 사태가 그 테마였다.
일찍이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일단 설정해 놓은 거짓 상황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울이는 부단한 노력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선의의 거짓말인 'white lie'는 애타주의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기적인 각도에서 감행하는 거짓말은 참으로 고단한 인생이렸다. 상기의 ①과 ②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데 대하여 부러워 하기를 잘하는 당신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 서 량 2011.07.10
-- 뉴욕중앙일보 2011년 7월 13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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