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기상대원들이 험악한 날씨를 예측할 때 한결같이 "It's going to be nasty."라 한다. 듣는 사람들의 간담이 좀 서늘해지는 말이다.
'nasty'는 14세기 초에 고대 불어에서 '더럽다(dirty; unclean)는 뜻이었고, 날씨가 사납다는 말로 1634년에, 성질이 더럽다는 의미로는 1825년에 쓰이기 시작한 아주 강도 높은 단어다. 영한사전에는 더러운, 외설스러운, 심술궂은, 고약한, 따위로 나와있다. 놀부나 뺑덕어미를 성격장애를 연상시키는 말이다.
인류는 본능적으로 깨끗함을 선호하고 더러움을 피하려 한다. 그것은 인간 고유의 성향이라기 보다 모든 동물들의 DNA에 각인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영리한 진도개는 배변 후에 뒷발질을 해서 자기 똥을 흙으로 덮고 고양이들은 침으로 세수를 하지 않는가. 우리 또한 험악한 세상을 깨끗이 살고싶어 한다.
고대영어에서 'clean'은 아담하다는 뜻이었는데 고대 홀란드 영어에서 현대 독일어에 이르기까지 '작다'는 의미가 있어왔다. 모차르트의 'Eine Kleine Nachtmusik(작은 소야곡)'의 'kleine'도 '클린'과 거의 같은 발음이다. 작은 것이 깨끗한 것이다.
18세기 말에 영국의 한 목사가 처음 말해서 유명한 잠언이 돼버린 'Cleanliness is next to godliness'(깨끗함은 신적인 것에 버금간다)라는 말을 당신은 여러 번 듣지 않았던가. 내가 청결하면 신과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니.
이제는 처음 화제에서 좀 벗어나 삼천포로 빠지려 한다.
우리말로 '구세주'로 번역되는 'Messiah(메시아)'는 원래 유대어로서 희랍어의 'Christos'와 같은 말이면서 '성유(聖油)를 바른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예수의 라스트 네임처럼 들리는 현대어 'Christ'도 같은 뜻이다. 성스러운 기름? 무슨 기름? 구약에 노아의 대홍수가 끝났다는 소식을 비둘기가 올리브 나뭇가지를 부리에 물고 와서 전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성유는 올리브 기름이라는 학설도 있지만, 사실 이집트 시대부터 기름은 특출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이집트 병사들은 사자의 기름을 몸에 바르면 아주 각별한 용기가 생긴다는 믿음조차 있었다.
왜 그랬을까? 무슨 이유로 얼굴이 기름으로 번질번질한 사람들이 신의 은총을 받는 기독교의 멤버십 카드를 받았는가. 그보다 훨씬 더 미치고 환장하게 궁금한 것은 성모 마리아가 가장 신임했던 성 요한이 일찍이 예수를 요단강에 데려가서 물 속에 몸을 담그게 함으로서 세례식을 거행했다는 역사적 기록이다. 아직도 침례교의 입단식에서는 사람 몸을 강물에 푹 담았다 꺼낸다. 침례예식은 인도의 간디스 강에 첨벙 뛰어드는 힌두교신자들도 마찬가지 형식을 취한다.
'Christ'의 어원은 어원사전에 'the anointed one'으로 나와있고 아직도 그 여운이 현대영어의 'ointment(고약)'에 그대로 남아있다. 어렸을 적 벌에 쏘였을 때 할머니가 금방 붉게 부풀어오른 환부에 참기름과 된장을 발라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다. 올리브기름이거나 참기름이거나 기름에는 살균작용이 있다. 지금부터 2000여 년 전 샤워도 없고 찜질방이나 대중탕 시설이 없었던 중동지방에서는 무슨 기름이건 간에 피부 상처의 살균작용이나 감염예방에 유효했다.
고약보다 박테리아를 퇴치하는 더 효과적인 방법은 흐르는 물의 끊임없는 세척작용이다. 의학적인 차원에서라도 우리처럼 신의 특혜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조석으로 샤워를 열심히 해야 할지어다. 매일 아침 '깨끗한 것은 신적인 것에 버금간다'(하나님 옆자리에 있다?)는 잠언을 상기하면서.
© 서 량 2010.08.15
-- 뉴욕중앙일보 2010년 8월 18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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