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간호사, 목사, 약사, 미용사, 요리사 할 때 쓰이는 '사'자는 한결같이 '스승 사(師)'임을 당신은 잘 알고 있으리라. 이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개 남들을 가르치는 짓을 일삼는 사람들이다. 병아리 '감별사'에서도 같은 '스승 사'자를 쓴다.
서슬이 시퍼런 검사(檢事)와 판사(判事)에서는 둘 다 '일 사(事)'를 쓴다. 반면에 변호사(辯護士)에서는 '선비 사(士)'자다. 검사와 판사는 일꾼(?)이고 변호사는 선비라는 이론이다.
무사(武士), 석사(碩士), 박사(博士), 운전사(運轉士)도 다 '선비 사'를 쓴다. 어릴 적 즐겨 먹던 비행기 과자처럼 생긴 사(士)자를 살펴보면 픽 웃음이 나온다. '선비 사'는 '열 십'자 밑에 '한 일자'가 합쳐서 된 회의문자이기 때문에 '하나를 알면 열을 깨우치는 사람'을 뜻한다는 학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혹시 열 번을 들어야 한 번 깨우친다는 뜻이라면?
우리 아득한 옛날에 사회적 계급현상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이었다. 선비 밑에 농민(農民), 그 밑에 공인(工人), 그리고 맨 밑바닥에 상인(商人)이 있었다. 그래서 요새도 상(商)놈이라 하면 상대를 멸시하는 칭호가 된다.
'선비 사'는 존칭이다. 근래에 부정적으로 빠진 '해결사(解決士)'의 의미는 드라마 같은 데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주인공 여동생 집에 쳐들어가서 가구를 때려부수며 공갈협박을 하는 깡패를 뜻한다. 이런 놈들을 선비 취급을 하는 것은 좀 너무하다.
집안에 무단 침입한 도둑놈을 수사적으로 미화시킨 사자성어로 양상군자(梁上君子: 대들보 위의 임금님)라 한다. '임금 군(君)'은 의젓한 한자어이면서 '군자'는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을 일컫는다.
'군'은 나이 든 사람이 어린 사람을 부르는 경어다. 영어의 '미스터'와 비슷한 개념이다. 당신은 김씨 성을 갖은 운전기사를 미스터 킴이라 부르지 않기를 바란다. 무슨 연고인지 미스터는 남자를 지칭하는 것 외에는 별로 듣기 좋은 호칭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Mr.(Mister)'의 본래 뜻은 15세기에 'master (장인)'라는 경칭이었다. 현대인들은 중세기 장인들을 그런 식으로 하대하는 게 아니다.
성적으로 미스터의 반대개념에 해당되는 'Miss'는 또 어떤가.
남자는 결혼을 했건 안 했던 간에 미스터로 불리지만 여자들은 양키들 간에 혼인 여부에 따라 'Miss'와 'Mrs.' 분별하는 언어습관이 있어 왔다. 하여튼 'Miss'는 17세기 중엽에 창녀나 첩, 혹은 정부(情婦)라는 뜻의 단어였다. 미스 킴에는 그녀가 당신의 정부일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깔려있었다. 'Miss"는 19 세기 초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혼인을 앞둔 미혼녀를 뜻했다.
역설적이지만, 특히 처음 보는 양키들 남녀가 말싸움을 할 때 남자 쪽에서 "Lady!" 하고 큰 소리로 외칠 때는 모욕적인 뉘앙스를 듬뿍 풍긴다. 마치도 한국여자가 한국남자에게 "점잖으신 분이 왜 이러세요!" 할 때와 그 분위기가 좀 흡사한 모양새가 된다.
'lady'는 고대영어에서 가정주부라는 의미면서 빵을 반죽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lady'는 '제빵녀'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이것은 얼마나 훈훈한 호칭인가. 'lady'의 뜻이 부엌일에 전념하던 밀가루 투성이의 가정주부에서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귀부인으로 변모한 것은 12 세기 초엽이었고 최종적으로 현대의 정숙하고 우아한 요조숙녀라는 의미로 낙착이 된 것은 19세기 경이었다.
별 큰 차이도 없는 거진 똑같은 사람과 사람들끼리 남녀의 성적인 차이의 간격을 좁히는데 이렇듯 면면하게 오랜 세월이 걸렸다는 사연에 대하여 당신에게 좀 알려 주고 싶었다.
© 서 량 2010.08.29
-- 뉴욕중앙일보 2010년 9월 1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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