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15. 아홉이라는 숫자

서 량 2010. 9. 13. 14:04

당신은 고양이가 아홉 번의 생()을 산다고 하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전설 속의 허기진 고양이가 어떤 집에 살금살금 들어간다. 접시 위에 배 고파하는 아홉 명의 아이들을 위해 준비 된 아홉 마리의 생선이 놓여 있다. 얌통머리 없는 고양이는 그 아홉 마리의 생선을 냠냠 짭짭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 치운다. 다음날 불쌍한 아홉 명의 아이들은 배가 고파 죽고 고양이 또한 배가 터지게 먹은 포식의 결과로 죽는다. 이 사실을 안 신()은 노발대발해서 고양이로 하여금 하늘에서 땅까지 아흐레 동안 떨어져 죽게 만든다. 지금도 고양이는 그 아홉 마리의 생선이 뱃속에서 하나씩 죽어 가도록 아홉 번을 죽어야 비로소 종국에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끈질기고 저주스러운 삶을 산다 한다.    

 

김만중(1637~1692)의 구운몽(九雲夢)은 또 어떤가.

 

주인공 성진(性眞)은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였으나 8선녀를 희롱한 죄로 양소유(楊少游)라는 이름으로 인간세상에 유배되어 태어난다. 과거에 급제한 그는 8선녀의 후신인 8명의 여자들과 차례로 만나 아내로 삼고 흥청망청 살다가 만년에 인생무상을 느끼고 크게 깨달아 8선녀와 함께 불문(佛門)에 귀의한다. 한 남자와 여덟 명의 여자는 그렇게 꿈 같은 아홉 개의 구름으로 후세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된다.

 

'He is on cloud 9'라 하면 한 사람이 아홉 번째 구름 위에 있다는 말이 아니라 흔히 쓰이는 슬랭으로 기분이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는 뜻이다. 'cloud 9'은 미국 기상관측소에서 명명한 'cumulonimbus(적락운: 積亂雲)'를 지칭한다. 저변이 3만 내지 4만 피트에 해당하고 위쪽으로 끝이 뾰족한 산이나 거대한 탑처럼 보이는 구름을 일컫는데 우리말로는 '쌘비구름' 혹은 '소나기구름'이라고도 한다.

 

아홉이라는 숫자는 구구법(九九法)만큼이나 까다로운 말이다. 옷을 최고로 멋지게 잘 입었다는 표현으로 'dressed to the nines' '모조리'를 뜻하는 'the whole nine yards' 또한 그 어원에 대한 학설이 구구(區區)하다. 이건 정말이지 대충 주먹구구로 때려잡을 화제가 아니다.

 

90년도 초반에 제작된 영화 러브 포션 넘버 나인(Love Potion No. 9)도 사실 옛날 팝송의 제목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서 왜 하필이면 사랑의 묘약 명칭이 넘버 나인인가 하는 의문점을 제시한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에도 아홉 개의 등급이 있고, 우리의 전통적 죽염 제조법도 대나무 속에 소금을 단단히 다져 넣고 소나무를 연료로 한 재래식 황토가마에 아홉 번을 반복해서 굽는다 한다. 고대 희랍과 이집트에서 가장 성스러운 숫자로 숭배 받은 아홉이라는 숫자가 장난이 아님은 틀림이 없다.

 

문이 겹겹이 달린 깊은 대궐을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 하고 키가 큰 사람의 몸을 구척장신(九尺長身)이라 하지를 않나. 군침이 넘어가는 구절판(九折坂)도 있고 임산부의 임신기간도 아홉 달이다.

 

9자는 일촉즉발의 위기감각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응급상황에서 처했을 때 양키들은 911을 부르고 한국인들은 119를 누르는지도 모른다. 'nine eleven' 사태도 하필이면 응급전화번호와 일치하는 전신이 오싹해지는 일부 이스람교도의 만행이 아니었던가. 쌍둥이 빌딩이 폭삭 주저앉는 광경이 아직도 눈에 아프다. 우리 선조들도 아홉 수를 꺼려해서 29살에는 혼사를 치르지 않았다.

 

9월은 가장 위험한 달이다. 그날 아침 아홉 시 경에 앞길이 구만리(九萬里) 같은 생명들이 무수하게 죽었다. 그날은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위기를 모면한 사람들과 현대판 종교전쟁의 목격자들의 가슴에 구질구질한 상처로 남아있다.

 

 

© 서 량 2010.09.12

-- 뉴욕중앙일보 2010 9 15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