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305

함박눈 / 윤지영

함박눈 윤지영 세상이 시끄러울 때마다 함박눈이 내렸다 두려움을 숨기려는 듯 바람은 자꾸 눈 사이를 휘젖고 다녔다 눈송이들은 어디론가 흩어지는 듯 했으나 어디에서든 세상을 덮고 있었다 아무것도 쳐부수지 못하는 무력으로 숨죽인 함성으로 우리집 뒤뜰 절벽 같은 의자의 등받이에 매달려 있었다 밤을 견디다 탈선한 철로처럼 휘어진 뼈들이 여전히 우주의 중력과 맞서고 있었다 눈이 그치면 순백의 얼굴 위에 찍힌 박자국들은 그냥 얼음이 될까 얼음이 언 땅을 녹이는 소리 갈라진 지도에 다시 시냇물이 흐르고 끊어진 골목들이 같은 언어로 노래하는 우연히 봄이 오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