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에 관하여 김정기 빨간 빗살 두 개가 빠져있는 화장실에서 손풍금 소리가 난다 초경의 갯비린내 바람에 쓸려나가고 빨간 글씨 위에 누워있는 큰언니 다홍치마 날린다 빨간 딱지에 징용된 애인 마른 숲을 헤치고 찾아 간 연병장에 피어있던 사루비아 꽃무리 쳐들어온다 이제 와보니 빨강은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문 동맥의 꿈틀거림이던가 헐거워진 신발 벗어보니 젊음을 목조이던 빨간 구두 한 켤레 치과에 갈 때, 짜장면 먹으러 갈 때 빨간 립스틱 지운다 저 나라까지 데려가야 할 빨간 가죽 모자 © 김정기 2009.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