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욱국
김정기
제목도 모른다
어느 간이역 나무 평상이 놓여있는 드라마를 보며
그저 저기 앉고 싶다.
앉을 자리만 보이는 눈으로 아욱을 다듬는다.
줄기는 껍질을 벗기고
이파리 하나씩 살펴보니
상처 없는 잎이 어디 있던가.
잎맥에 가는 줄이 있는가 하면.
조그만 벌레가 갉은 흔적이라던가.
바람결에 구겨진 흉터라도 남아있는 아욱을
풋내 빠지도록 주물러
마른 새우 넣고 조선된장 풀어 국을 끓인다.
들깨가루를 넣어야 구수하다고
대중 쳐서 얹고
아욱이 부드러워 질 때까지 약한 불에 놓는다.
이제 풋내나는 들판의 바람결도 삭아
아욱은 예감까지 익어 버린다.
드라마는 여자주인공이 풀이 죽어서
집을 떠나면서 약간 늘어진 눈꺼풀을 치키며
아직 남아있는 가을을 향해 손을 흔든다.
© 김정기 200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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