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공기 번데기 / 김정기

서 량 2023. 2. 5. 18:42

 

공기 번데기

 

                          김정기


긴 바지 걷어 올리고 물 위를 걸으리.

조약돌 밟고 나면 숲이 다가와 얼비친 세상 놓아두고

궂은 굴곡 건너 어제 감은 머릿결 쓰다듬으며

지금껏 열려 본일 없는 서랍에서 끄집어내는

웃음을 지어 보리.

 

그의 공기 속에 들어가 살라고 하면.

 

쨍하게 열어젖힌 창 커튼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명주실 타래 되어 온몸을 감겨오면

그의 창공을 향해 한 마리 누에로 껍질을 벗으리.

 

공기 번데기로 풋풋한 청춘의 문을 다시 두드리는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내 눈에만 보이는 그의 나라  엿보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 뛰는 것은.

그가 말하는 두 개의 달을 동시에 바라보며

정말 떠나는 것이 절정이란 말인가

누구도 흉내 못 낼 공백에서 만드는 고요로

아 아 하루키*의 공기 속에 들어가 살라고 하면.

 

*일본작가

 

© 김정기 2009.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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