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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130. 맞고 때리기

맞고 때리기 'hit'의 고대영어인 'hyttan'은 본래 누구와 마주치거나 '만난다'는 뜻이었다가 나중에 '때린다'는 말로 변했다. 그리고 1955년에 사람을 계획해서 암살한다는 지하조직의 은어로도 변했고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hitman, 청부살인자'이라 불렀다. 사람이나 상황을 처음으로 접(接)한다는 의미의 'encounter'는 '적(適)을 만난다'는 뜻인 고대불어 'encontrer'에서 유래했다. 간난아기가 낯선 얼굴을 보면 경악하듯 어른들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모종의 긴장감이나 적대심이 생기는 것일까. 그래서 양키들은 손에 무기가 없다는 증거를 보여주려고 서로 악수를 하고 동양인들은 예절 바르게 머리를 조아리는지도 모른다. 이 관습은 타인들 간에 무장해제와 평화를 확인하는 거룩한 예식..

|컬럼| 129. 엄마가 없어지다니

엄마가 없어지다니 'mother'는 영어, 독일어, 희랍어, 불어, 스페인어, 네덜란드 말 그리고 범어에 이르기까지 발음이 아주 비슷하다. 중국어로도 엄마를 '마마'라 하는데 이태리어와 스웨덴 말의 'mamma'와 그 발음이 똑같다. 아기가 엄마를 향해서 내는 비음(鼻音)은 기분이 좋을 때 콧노래가 나오는 심리와 같은 것으로 풀이된다. 불어의 'maman'는 콧소리가 세 번이나 들어간다. 음성학적으로 엄마는 명실공히 범세계적인 단어다. 1958년에 김종래(1927~2001)는 라는 장편만화로 전쟁 후 피폐했던 전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그 책은 술과 노름에 빠진 아버지 때문에 팔려간 엄마를 찾으려는 아들 금준이의 애환을 그린 우리 최초의 만화 베스트셀러였다. 는 이태리의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Edmond..

|컬럼| 128. 안녕! 에덴의 동산이여

안녕, 에덴의 동산이여! 'know'를 고대영어에서는 'cnawan'이라 했다. 이 어려운 말은 전인도유럽어의 'gno'에서 유래했다. 같은 어원에서 생겨난 'Gnostic'은 기독교 교리에서 '영지(靈智)'를 의미한다. 어릴 적 영어를 처음 배우던 시절에 장난 삼아 'know'를 '크노우'라 읽었던 일이 기억난다. 'Gnostic'은 '그노스틱'이라 발음한다. 'sexual' 앞에 '없다'는 뜻의 희랍어 접두사 'a'를 붙여 'asexual'이라 하면 '무성(無性)'이라는 뜻이 되듯이 'gnostic' 앞에 'a'를 붙이면'agnostic'이 되는데 이 말은 진리의 본질은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일명,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를 일컫는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

|컬럼| 127. 징그러운 것은 좋은 것이다

징그러운 것은 좋은 것이다 'gross'는 14세기 중엽에 '크다, 거칠다, 교만하다'는 뜻이었는데 16세기 말부터 '뻔뻔스럽다, 괴상하다'는 의미도 생겼고 1958년에는 미국 대학생들 간에 '역겹다, 징그럽다'는 속어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신은 금발의 여자친구가 "It's gross!"라 하면 어떤 사물이 크다는 말이 아니라 징그럽다는 뜻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그녀가 당신의 연봉에 대하여 언급할 때 'gross income'이라 하면 그것은 '징그러운 수입'이 아니라 세금을 공제하지 않은 '총수입'을 뜻한다. '징그럽다'는 우리말 사전에 '보거나 만지기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흉하거나 끔찍하다'로 나와 있다. 이 말은 '증(憎)하다'에서 유래했다 한다. 옛날 말인 '거즛말'이 현대발음으로..

|컬럼| 126. 쇼캄쇼바

'flapper'는 1918년에 일차세계대전이 끝난지 3년 후 1921년에 생긴 슬랭이다. 전쟁을 마감한 사내들이 자괴감에 시달리는 동안 그들을 사랑하는 여자들의 행동거지가 자유분방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flapper'는 깃발이 펄럭이거나 새가 퍼덕거리며 날갯짓을 하는 의성어에서 유래했으며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는 버르장머리 없고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여자를 지칭한다. 육이오 사변 후 1950년대의 우리 사회에도 전후파 기질의 '후라빠'들이 출몰했다. 젊고 발랄한 그들은 허리가 잘록하게 돋보이도록 고등학교 교복을 몸에 꼭 끼게 고쳐 입거나 불량배 남학생들과 고려당이나 태극당 빵집에서 마주앉아 눈을 내리깐 채 시대의 첨단을 가늠하는 숨을 몰아 쉬었던 것이다. 그들은 건강한 남자 고등학생들 가슴에 깊이..

|컬럼| 125. 팀 플레이어

팀 플레이어 동물도 사람도 개별적으로는 각기 하나의 독립된 유기체이지만 무리를 이루어 살아야 하는 자연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가족과 이웃과 국가가 미세하게 얽혀있는 지구촌에서 인터넷을 조석으로 쏘다니며 단수가 아닌 복수로서 생존한다. 우리말은 영어에 비하여 사물을 세는 개별적 기본 단위가 무척 까다롭다. 옷 한 벌, 구두 한 켤레, 북어 한 쾌, 달걀 한 꾸러미, 바느질 한 땀, 꽃 한 송이, 등등이 그 좋은 예다. 반면에 영어는 '떼'를 나타내는 명사가 세분화 돼 있다. 이를테면 ‘pack of wolves, 늑대 떼’, ‘flight of birds, 새떼’, ‘school of fish, 물고기 떼’, ‘swarm of bees, 벌떼’, ‘army of ants, 개미 떼’, ‘pride..

|컬럼| 124. 받아라!

받아라! 우리말이 자꾸 영어로 대치되고 있다. 영어가 섞이지 않으면 행여 의사소통을 못할세라 우리는 말끝마다 영어를 남발하고 있다. 일례로, 요새는 누구도 '시장개발을 위한 개념'이라 하지 않고 '마케팅 컨셉'이라 한다. 우리는 왜 '개념'이라는 좋은 우리말을 제쳐놓고 '컨셉'이라는 영어를 어색하게 발음하는가. 'concept'는 라틴어 'concipere'의 '받아들이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우리말로 '개념'이라 하고 옥편은 '대개 개'와 '생각 념'으로 풀이한다. 개념은 ‘대충 하는 생각’이랄 수 있다. 그것은 여러 관념 중에서 공통된 요소를 종합 분석한 유추의 결과이며 수학공식에서처럼 철저한 정확성을 초월한 여유만만한 인간의 인식체계다. 우리의 인식작용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된다. 인..

|컬럼| 123. 이름에 대하여

이름에 대하여 자고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했거늘, 그 풍조를 좇아 우리는 명문대학을 추구하고 명품을 밝히는 관습이 있다. 하다 못해 얼마 전에 무심코 본 티브이 광고에서도 '김치도 명품이 있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춘수는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며 의미심장하게 술회한다. 이 발언은 꽃도 관등성명이 분명해야 꽃답다는 엄청난 성명서처럼 들린다. 반면에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1597) 2막 2장에서 줄리엣의 입을 빌려 이렇게 설파한다. "What's in a name? That which we call a r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