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24. 받아라!

서 량 2011. 1. 23. 13:10

 우리말이 자꾸 영어로 대치되고 있다. 영어가 섞이지 않으면 행여 의사소통을 못할세라 우리는 말끝마다 영어를 남발하고 있다. 일례로, 요새는 누구도 '시장개발을 위한 개념'이라 하지 않고 '마케팅 컨셉'이라 한다. 우리는 왜 '개념'이라는 좋은 우리말을 제쳐놓고 '컨셉'이라는 영어를 어색하게 발음하는가.

 

 'concept'는 라틴어 'concipere' '받아들이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우리말로 '개념'이라 하고 옥편은 '대개 개' '생각 념'으로 풀이한다. 개념은 대충 하는 생각이랄 수 있다. 그것은 여러 관념 중에서 공통된 요소를 종합 분석한 유추의 결과이며 수학공식에서처럼 철저한 정확성을 초월한 여유만만한 인간의 인식체계다.

 

 우리의 인식작용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된다. 인식은 수동적이다. 'concept'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conception: 개념형성; 수태; 임신'이라는 추상명사가 나중에 '생각'이라는 단순한 뜻으로 변했다. 같은 어원에서 19세기 말경 'contraception: 피임'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immaculate conception'을 무염시태(無染始胎)라 하는데 1854년에 책정된 가톨릭 교리로서 성모 마리아가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원죄를 지니지 않고 세상에 태어났다고 보는 신성한 안목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크리스마스처럼 우리 문화의 일부가 돼 버린 주기도문을 당신은 밥상머리 같은 데서 여러 번 들었을 것이다. 특히 아멘, 하기 직전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부분의 '대개'에 신경을 쓰기 바란다. ('For the kingdom, the power, and the glory are yours now and for ever') 이때 'for' '대충'이라는 뜻의 '대개'로 번역하지 말고 '왜냐하면'이라 해야 된다는 고지식한 주장도 있다. 허지만 그러면 너무나 따지는 듯한 말투가 기도문의 경건한 문맥을 손상시키는 난점이 생긴다. 한 번 들어 보시라.  "...다만 악에서만 구해주시옵소서.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이래서 '대개'를 빼고 말하는 근래의 추세도 있지만 이미 귀에 박힌 '대개 나라와 권세와..' 하는 '컨셉'이 한결 더 여유 있게 느껴짐을 어이할꼬.

 

 'tennis: 정구'는 고대불어의 'tenir: 받다'의 명령형 'tenez: 받아라!'에서 생겨난 현대어다. 곱슬머리 불란서사람들이 말랑말랑한 정구 공을 상대방 코트로 쳐 넣으면서 "받아라!" 하며 소리치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받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세뱃돈을 받고 신의 은총을 받고 범칙금 통지서도 받는다. 그러나 우리말 사전에 나와있는 '받다'의 두 번째 뜻인 '머리나 뿔로 세차게 부딪치다'라는 의미를 당신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황소가 투우사를 뿔로 '받는' 공격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정구 공을 자기 코트에 받아드린 다음 그 공을 상대방에게 되받아 쳐 보내는 과감한 스포츠 정신의 전율을.

 

 능력이 든든한 사람은 사태에 임하여 공연히 큰소리를 치지 않는다는 뜻의 우리 속담, '받는 소는 소리치지 않는다' 또한 '받다'의 두 번째 뜻에서 왔다.

 

 대기업의 핸섬하고 카리스마 있는 직원이 마켓팅 컨셉을 프리젠테이션 하는 장면을 한국 티브이 드라마에서 본다. 화면 속 회사원들의 마음은 영어와 영어를 되받아 치는 한국어의 믹스업이 된다. 나 또한 이중언어의 랭귀지 스타일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그런 트렌드에 와장창 태클을 걸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다. 바로 이런 언어적 카오스가 오늘날 당신과 나의 필(feel)이요 컨셉이 아닐까 하는데.

 

 

© 서 량 2011.01.23

-- 뉴욕중앙일보 2011 1 26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