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25. 팀 플레이어

서 량 2011. 2. 6. 12:37

 동물도 사람도 개별적으로는 각기 하나의 독립된 유기체이지만 무리를 이루어 살아야 하는 자연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가족과 이웃과 국가가 미세하게 얽혀있는 지구촌에서 인터넷을 조석으로 쏘다니며 단수가 아닌 복수로서 생존한다.

 

 우리말은 영어에 비하여 사물을 세는 개별적 기본 단위가 무척 까다롭다. 옷 한 벌, 구두 한 켤레, 북어 한 쾌, 달걀 한 꾸러미, 바느질 한 땀, 꽃 한 송이, 등등이 그 좋은 예다.

 

 반면에 영어는 '떼'를 나타내는 명사가 세분화 돼 있다. 이를테면 pack of wolves: 늑대 떼, flight of birds: 새떼, school of fish: 물고기 떼, swarm of bees: 벌떼, army of ants: 개미 떼, pride of lions: 사자 떼, 등등, 동물의 동아리를 일컫는 명사가 각양각색이다.

 

 인류는 상호간의 치열한 경쟁의식을 전쟁으로 피력하는 대신에 스포츠 정신으로 승화시킨다. 미식축구나 야구에 심취한 당신은 TV를 보며 크게 소리친다. 엊그제 일요일 저녁은 수퍼볼(Super Bowl) 실황중계로 전 미국이 떠들썩했다.

 

 'kickoff'는 미식축구경기의 운을 띄우는 '첫 번 공차기'라는 말로 1857년에 생겨났지만 지금은 어떤 일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광범위하게 쓰인다. 재즈 음악회에서 악장이 "For a kickoff, we'll play Take Five." 하면 "첫 번째 곡으로 테익 파이브를 연주하겠습니다."라는 뜻.

 

 'touchdown'도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한다는 일반용어로 변했다. 우리 귀에 익숙한 '태클(tackle)' 또한 미식축구 냄새가 물씬 난다. 일요일 밤 경기가 끝난 다음날 아침에, 즉, 어떤 일이 있은 후 뒤늦게 이러쿵저러쿵 비판하는 사람을 'Monday morning quarterback'이라 한다.

 

 'play hardball'은 남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상황을 뜻하고 'throw a curveball'은 곡구(曲球)를 던지듯 불시에 상대를 골탕먹이는 계략을 뜻한다.

 

 한 양키가 당신에게 "Give me a ballpark figure." 하면 그것은 야구장이 아닌 어떤 상황에 대하여 대략의 수치나 금액을 알려달라는 관용어다. 그리고 "You dropped the ball." 하면 공을 떨어뜨리는 것 같은 실수를 했다는 소리다. 미식축구나 야구 없이 어찌 영어를 하나 싶다. 스포츠 없는 삶은 정녕 까칠한 삶이다.

 

 '팀장'은 영어의 'team'과 우리말 '장(長)'의 조합어다. 'team'은 고대영어에서 '짐이나 수레를 끄는 동물'이라는 뜻이었다. 포장마차를 끄는 서부시대 말이나 달구지를 끄는 소가 바로 'team'이다. 팀은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다. 개인의 영달보다는 팀의 영예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team player'도 1928년에 야구용어에서 생겨났다.

 

 우리 고유의 스포츠를 살펴 보았다. 당나라에서 고구려와 신라에 전해진 격구(擊毬)와 줄다리기의 집단의식에 대하여 인터넷에서 읽었다. 상대를 자빠뜨리려는 씨름꾼의 세찬 숨소리가 손에 땀을 쥐게 했고 제기차기 같은 개인적 탤런트 쇼도 재미 만점이었다. 혹시 우리는 거대한 단체전이나 개인기능 쪽으로만 능통해 왔던 것은 아닐까.

 

 한갓 열 손가락 안팎의 팀 플레이어들이 자기 팀의 능률과 승리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인다. 영웅은 팀 워크의 울타리 안에서만 태어난다. 이제는 대한민국 축구팀도 지구촌을 주름잡으며 강력한 'team spirit'를 발휘하고 있다. 그들의 경이로운 팀 워크를 향하여 뜨겁고 애정 어린 박수를 보낸다.

 

 

© 서 량 2011.02.05

-- 뉴욕중앙일보 2011년 2월 9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