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를 고대영어에서는 'cnawan'이라 했다. 이 어려운 말은 전인도유럽어의 'gno'에서 유래했다. 같은 어원에서 생겨난 'Gnostic'은 기독교 교리에서 '영지(靈智)'를 의미한다. 어릴 적 영어를 처음 배우던 시절에 장난 삼아 'know'를 '크노우'라 읽었던 일이 기억난다. 'Gnostic'은 '그노스틱'이라 발음한다.
'sexual' 앞에 '없다'는 뜻의 희랍어 접두사 'a'를 붙여 'asexual'이라 하면 '무성(無性)'이라는 뜻이 되듯이 'gnostic' 앞에 'a'를 붙이면'agnostic'이 되는데 이 말은 진리의 본질은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일명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를 일컫는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나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 같은 20세기 철학의 태두들이 제창한 불가지론은 우주와 신의 완벽함과 절대성을 향하여 치열한 반론을 펼친다. 이 철학체제는 근래에 발생한 일본의 대지진이 일본인들의 비기독교적 우상숭배에서 기인했다고 망발한 조용기 목사의 정신상태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김민수나 서정범 같은 어원학자들은 '알다'를 사물의 핵심을 뜻하는 '알'(卵)과 종결어미 '다'가 합쳐져 된 우리말로 정의한다.
국어사전이 '이성을 알다'의 뜻을 '이성과의 성교를 경험하다'로 풀이하고 있는 점에 대하여 당신은 얼굴을 붉히면서 놀라기를 바란다. 앎이 체험을 위주로 한다는 사고방식은 우리나 양키들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know'에는 13세기경 'to have sexual intercourse with: 누구와 성교하다'라는 뜻 또한 생겨난 것이다. 여자를 안다는 것은 여체를 경험했다는 말이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알겠습니다'라 대답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알았다'고 마무리해 주는 것이 우리말의 정석이다. '~겠다'는 미래형이고 '~았다'는 과거형이다. 앎의 미래형은 예절 바른 말투이고 과거형은 건방진 선언이다. 우리는 자신의 미래로 느껴지는 윗사람을 향하여 공손한 태도로 '알겠습니다' 하고 자기 과거로 뵈는 연소자에게는 생각도 안 해보고 '알았다'며 거만하게 대화를 종결한다.
사람은 생각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기를 원한다고 통분했던 버트런드 러셀은 'So far as I can remember, there is not one word in the Gospels in praise of intelligence: 내가 기억하기에 복음서에는 지성을 칭송하는 말이라고는 단 한 마디도 없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불가지론은 앎이 믿음을 선행해야 된다는 뼈아픈 선택에 매달린다.
당신도 익히 알고 있는 바, 에덴의 동산을 배경으로 한 기록 중 창세기 2장 16절과 17절에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타이르기를,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들의 열매는 자유롭게 먹어도 좋으나 -- 단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아라. 만약 그 열매를 먹으면 분명코 죽는다, 하는 구절이 있다. “You may freely eat the fruit of every tree in the garden -- except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If you eat its fruit, you are sure to die.” (New Living Translation Edition: 2007)
그렇다. 인류가 믿음 속에 안주하기 위해서는 그 두 벌거벗은 남녀가 선과 악을 판별해주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지 말았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범칙행위 때문에 평안과 영생을 부여 받지 못한 그들의 후예들이 오늘도 늙음과 질병과 천재지변으로 무참히 죽어가고 실종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서 량 2011.03.20
-- 뉴욕중앙일보 2011년 3월 23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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