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23. 이름에 대하여

서 량 2011. 1. 9. 12:20

자고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했거늘 그 풍조를 좇아 우리는 명문대학을 추구하고 명품을 밝히는 관습이 있다. 하다 못해 얼마 전에 무심코 본 티브이 광고에서도 '김치도 명품이 있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춘수는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의미심장하게 술회한다. 이 발언은 꽃도 관등성명이 분명해야 꽃답다는 엄청난 성명서처럼 들린다.

 

반면에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1597) 2막 2장에서 줄리엣의 입을 빌려 이렇게 설파한다. "What's in a name? That which we call a rose /By any other name would smell as sweet."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이름 속에 뭐가 있다는 말입니까? /어떤 다른 이름이라 해도 달콤한 향기는 어김이 없는 걸요: 필자 譯) 그리하여 줄리엣은 로미오의 몬타그(Montague)와 자신의 캐푸렛(Capulet) 가문 간에 뿌리 깊이 박힌 원한관계와 '이름'의 제한성을 초월하려는 비극적 사랑을 감행한다.

 

‘name’은 고대 영어 'nama'에서 '이름'이라는 뜻이었다가 13세기경에 'reputation:명성'이라는 의미도 파생됐다. 그래서 '명품'을 'name brand'라 한다. 예컨대 'She wants only name brands'. 하면 그녀가 유명 제품만 찾는다는 말. 시쳇말로 명품이라면 '짝퉁'이라도 좋다는 데야 어쩔 것인가.

 

우리의 '성(姓)'은 '계집녀' 변에 '날 생'자를 조합한 글자다. 이 한자를 보면 아무래도 동양의 가계는 모계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성을 영어로는 'last name; family name; surname'이라 하는데 'surname'의 'sur'는 고대불어의 '높다'는 의미로서 14세기경부터 지체 높은 귀족들만이 성을 갖기 시작했다는 그들의 역사를 반영한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에 중국에서 이미 성씨를 개인의 이름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삼국시대 때 지위 높은 가문에서 성을 이름 첫 머리에 붙여 썼다. 일본인들이 성씨를 갖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초엽이라니 그들이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보다 얼마나 뒤늦게야 가족체계가 이루어졌는지 가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어릴 적 국어교과서 첫 페이지에 나오던 철수와 영희가 생각난다. 당시 우리의 의식구조를 대변하던 그들의 성을 알 수가 없다. 김철수와 이영희일까. 아무튼 성씨를 밝히지 않은 그들은 뼈대 있는 귀족 집안이라기보다 서민적이고 소탈한 가정의 자녀들이 아니었나 싶다.

 

근세기 역사에서 우리 선조들의 아명(兒名)은 대체로 무병장수를 염원하는 동기의식 때문에 일부러 천하게 짓는 경향이 있었다. 조선이 기울어지면서 근대화의 격랑 속에 뛰어들었던 고종황제의 아명이 개똥이었다. 그리고 고려 말부터 조선 초 세종대왕 시기에 걸쳐 명성이 자자했던 황희(黃喜)의 아명 또한 도야지(都耶只)였다.

 

14세기 이후 가장 흔한 서구인들의 이름이 성 요한에서 유래한 'John'이었는데 20세기 초반에 'john'은 남자 변소나 창녀들의 손님이라는 슬랭이 됐다. 'Richard'는 본래 중세 영어에서 '지배자'라는 뜻이었다. 'Dick'은 'Richard'의 애칭이다. 그런데 19세기 말경 'dick'은 남자 성기라는 뜻의 속어로 변했다. 

 

이렇듯 서구인들의 이름은 세월이 흐르면서 귀족성향을 버리고 속어로 전락하여 개똥이나 도야지처럼 아주 어처구니 없는 친근감으로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다.

 

© 서 량 2010.01.08                                                                                                                          

-- 뉴욕중앙일보 2011년 1월 12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