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29. 엄마가 없어지다니

서 량 2011. 4. 4. 10:52

 

'mother'는 영어, 독일어, 희랍어, 불어, 스페인어, 네덜란드 말 그리고 범어에 이르기까지 발음이 아주 비슷하다. 중국어로도 엄마를 '마마'라 하는데 이태리어와 스웨덴 말의 'mamma'와 그 발음이 똑같다.

 

아기가 엄마를 향해서 내는 비음(鼻音)은 기분이 좋을 때 콧노래가 나오는 심리와 같은 것으로 풀이된다. 불어의 'maman'는 콧소리가 세 번이나 들어간다. 음성학적으로 엄마는 명실공히 범세계적인 단어다.

 

1958년에 김종래(1927~2001)는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장편만화로 전쟁 후 피폐했던 전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그 책은 술과 노름에 빠진 아버지 때문에 팔려간 엄마를 찾으려는 아들 금준이의 애환을 그린 우리 최초의 만화 베스트셀러였다.

 

<엄마 찾아 삼천리>는 이태리의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Edmondo De Amicis: 1846-1908) 가 쓴 동화를 1976년 일본에서 제작한 TV 만화영화였다. 무료진료소를 운영하는 의사 아들 마르코는 부자나라 아르헨티나에 가서 가정부로 일하는 엄마를 찾아 긴 여정에 오른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Please Look After Mom>가 전세계에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각광을 받고 있다.  신경숙 또한 김종래와 아미치스처럼 자식을 엄마에게서 생이별 시키는 심한 충격을 일으킨다. 엄마는 서울역 지하철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엄마의 실종은 요즘 유행하는 여성패션의 하의실종(下衣失踪)과 발칙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나는 엄마를 찾아 서울역 근처로 현장검증을 떠난다. 그리고 그녀의 실종에 대한 책임을 마지막으로 같이 손을 잡고 있었던 그녀의 남편에게 추궁한다. 금준이 아버지가 노름꾼이었고 마르코 아버지 또한 생활력이 부실한 의사였듯이 그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위인이었다. 그는 왜 전철이 다음 역에 도착할 때까지 아내가 으레 탑승한 줄로 알았는가. 왜 그는 지하철을 타는 바로 그 순간 아내를 보살피지 않았는가.

 

현대식 남편은 아내와 동행(同行)하지만 우리의 유교적 지아비는 아내가 자기를 따라오는 종행(從行)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는 "아내를 잃어버리고 빈집으로 돌아와 이틀 밤 사흘 낮을 잠만 잤다." (160쪽)

 

아버지가 가족을 등한시하는 이유는 가족의 생계를 위한 스트레스에서 비롯된다. 그는 현실에 급급하기 위하여 가족과의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이 심한 결핍 현상을 일으키는 자폐증에 빠진다. 가정을 향한 문이 굳게 닫힌다. 자식들 또한 자신들의 디지털 삶에 쫓기어 엄마의 아날로그 인생을 외면한다.

 

엄마라는 호칭에는 한 여자로서의 개성과 자유가 들어설 공간이 없다. 술좌석에서까지 상대를 부를 때 과장님, 부장님 하며 개별성을 말살하는 우리의 언어습관이 아니던가. 당신과 나는 눈앞에 사람이 얼씬만 하면 책임의식과 혈연관계를 일깨워주려 한다. 처음 보는 식당 종업원과도 언니, 어머니, 아버지, 이모 관계를 서슴없이 맺는 우리들이다.

 

물질이라는 뜻의 'matter'도 어머니라는 라틴어 'mater'와 어원이 같다. 현대어의 'alma mater'는 모교(母校)라는 의미다. 두말할 나위 없이 어미(母) 는 모든 생존하는 생명의 본질이다.

 

그러나 엄마는 신경숙이 지적했듯이 "우리들 뒤에 빈 껍데기가 되어 서 있는" 존재다. 종적인 인간관계를 강조하는 '군사부일체'에도 엄마는 끼지 못한다. 반면에 십계명의 다섯 번째 조항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엄명을 내리고 있다. 서구인들은 일찌감치 엄마를 인생에 포함시키는 예우를 베푼 것이다.

 

율법이 아닌 비유법으로 엄마 사랑을 노래한 고려 가요 사모곡을 당신은 기억하는가 --- 호미도 날이언 마라난 낫같이 들리도 없어라 / 아버님도 어비어신 마라난 위 덩더등셩 / 어마님같이 괴시리 없어라 / 아소 님하 어마님같이 괴시리 없어라

 

© 서 량 2011.04.03

-- 뉴욕중앙일보 2011년 4월 6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11/04/05/society/opinion/1179292.html

 

[잠망경] 엄마가 없어지다니

'mother'는 영어, 독일어, 희랍어, 불어, 스페인어, 네덜란드 말 그리고 범어에 이르기까지 발음이 아주 비슷하다. 중국어로도 엄마를 '마마'라 하는데 이탈리아어와 스웨덴 말의 'mamma'와 그 발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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