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30. 맞고 때리기

서 량 2011. 4. 18. 10:33

 'hit'의 고대영어인 'hyttan'은 본래 누구와 마주치거나 '만난다'는 뜻이었다가 나중에 '때린다'는 말로 변했다. 그리고 1955년에 사람을 계획해서 암살한다는 지하조직의 은어로도 변했고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hit man'이라 불렀다.

 

 사람이나 상황을 처음으로 접()한다는 의미의 'encounter''()을 만난다'는 뜻인 고대불어 'encontrer'에서 유래했다. 간난아기가 낯선 얼굴을 보면 경악하듯 어른들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모종의 긴장감이나 적대심이 생기는 것일까. 그래서 양키들은 손에 무기가 없다는 증거를 보여주려고 서로 악수를 하고 동양인들은 예절 바르게 머리를 조아리는지도 모른다. 이 관습은 타인들 간에 무장해제와 평화를 확인하는 거룩한 예식이다.

 

 누구를 '만난다' '맞다'에서 변천된 말인데 말의 근원을 알고 보면 썩 유쾌한 기분이 드는 표현이 못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맞다'는 ①옳다 ②적 혹은 어떤 세력에 대항해서 맞서다 ③얻어맞다 등의 뜻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만나다' '()''()'가 합쳐져서 마주나다 >맛나다 >만나다로 변화된 것이라 한다. 나와 당신의 만남이 서로 얻어맞으며 맞서기 위함이라면?

 

 '만나다'라는 뜻인 'meet'의 고대영어 'metan'은 원래의 만난다는 뜻에 첨가되어 1831년에는 '사냥'이라는 의미 또한 생겨났다. 양키들끼리 만나는 광경에서는 사자와 얼룩말의 상봉처럼 쫓고 쫓기는 약육강식의 피비린내가 난다.

 

 때린다는 말이 들어간 속어로 '눈치로 때려잡다'라는 표현을 들으면서 당신은 깜짝 놀랄 것이다. 우리는 왜 이다지도 언어적으로 난폭한 장면을 연출하는가. 이때 '잡는다'는 사위가 오면 '닭을 잡는다' '잡다'와 동일한 매우 살기등등한 표현이다. 음식도 그냥 얌전하게 먹지 않고 '때려먹는다' 하고, 하던 일도 그냥 치우느니 꼭 '때려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들이다. 요새는 점잖게 전화를 거는 대신 '전화를 때린다' 하고, 누구를 배신할 때 '배신 때린다' 하고 어떤 문제가 '골 때린다' 한다. 이런 말을 함부로 내뱉는 나도 당신도 언어의 조폭(組暴) 단원임이 틀림없다.

 

 1970년 대부터 쓰이는 속어로 'hit on'은 이성에게 수작을 거는 상황을 뜻한다. 그래서 'He hit on her'는 그 남자가 그녀를 구타했다는 말이 아니라 시쳇말로 그녀에게 작업을 걸어왔다는 뜻이니 착오 없기를 바란다. 전자라면 경찰을 불러야 하고 후자인 경우에는 말로 해결한 일이다.

 

 무엇이 어떤 성공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hit'라 하고 특히 절찬리에 유행하는 노래를 'hit song'이라 한다. 한 번으로 성이 안차는 우리는 무엇이 '히트(hit)를 쳤다(hit)'고 두 번 힘주어 같은 말을 반복한다.

  

 '때리다'는 어원학적으로 닿다 >다히다 >다리다 >대리다 >때리다 같은 어형변화를 거쳤다는 학설이 제일 유력하다. '때리다(hit)' '대다(touch)'는 같은 어원 '닿다'에서 생겨났다. 사람을 태우려고 인도에 차를 ''고 시를 다듬기 위하여 작품에 손을 ''는 행동은 매우 평화로운 사태다.

 

 때리(닿)는 행위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천지창조'에서처럼 신과 인간의 손가락이 서로 맞는 영혼의 교류를 암시한다. 사랑하는 남녀끼리 살을 맞대는 '스킨쉽'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의 방정식이란 종종 두들겨 맞는 것이 맞는 답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 해서 성춘향같이 뜬금없이 곤장으로 볼기를 맞으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원컨대 정신적으로 맞고 때리는 애정 어린 정서교류에 힘입어 성숙하는 절차가 우리의 생존방식이 아니던가.

 

© 서 량 2011.04.17

-- 뉴욕중앙일보 2011 4 20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