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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463. 자극 과잉시대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 곳곳 확성기에서 정신과 응급상황을 외치는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숨가쁘게 “코드 그린!” 소리친 후 병동번호를 알린다. 평온한 목소리로 말해주면 안 될까. 허기사 그러면 아무도 급히 반응하지 않을지도 몰라. 꽃을 뜯어먹으려는 사슴이 앞뜰을 침입하는 순간 “어이!” 하며 가라고 신호하면 싹 무시당한다. “야!” 하고 고함을 질러야 후다닥 도망간다. 사슴도 정신병원 의사들도 경미한 자극에는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세상이다. ‘sensory overload’ 하면 얼른 귀에 들어오는 말을 놓고 사전은 감각과부하(感覺過負荷)라 묵직하게 해설한다. 참으로 뻑적지근한 한자어다. 자극이 지나치면 금세 접수할 수 있지만 낮은 목소리는 신경계통에 등록조차 되지 않는 거다. 약물의 복용량도 마찬가..

|詩| 비무장지대

비무장지대 찍찍 산새 소리지뢰를 덜컥 밟은 일등병 성미 더러운 운전병달각거리는 트랜스미션 소리 산길 오솔길을 들입다 달린 거다목적지 MASH 이동식육군외과병원위생병은 귀여운 바둑이나는 쉭쉭 바람 새는 클라리넷품에 안고 찍은 사진 한 장 詩作 노트:군대생활을 또 하라 하면 못한다허기사는 그러라는 사람도 없지만 © 서 량 2024.03.17

|詩| 목관악기

목관악기 화를 내며 박자를 지키는 아이들윤끼 나는 악기를 거머쥔 손성질 사나운 뺀드부 아이들클라리넷 넷 알토 색소폰 둘 테너 색소폰 하나숲을 향한 각도가 제각각 다르네때때로 엇박자를 내는 뺀드부 아이들너네들 다들 한통속이로구나   詩作 노트:아직 내 몸에 뺀드부 기질이 숨어있다 옛날 어른들이 딴따라 기질이라며 멸시하던 기질 © 서 량 2024.03.16

|詩| 명상

명상 뽐내는 마음 뭐가 뭔지 모르는 마음이반반씩 섞이는 거라 귓속이 간질간질한 청진기키가 내 키 반만 한 여자아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 나네서 중위가 남의 배를 만지며 명상에 잠기는 장면이다 이거 詩作 노트:전방에서 군의관 근무를 할 때 종종 군인가족 진료를 했다. 배앓이 하는 어린애 배에서 나는 꼬르륵 하는 소리가 되게 컸어. 생각난다. © 서 량 2024.03.15

|詩| 전화대화

전화대화 Costa Rica 피자집 앞에서 전화를 건다 아 여보세요 사람이 없는 건너편 세상에게 말을 거는빈대떡 그림 높이 걸려있는 이 세상 meatball 버섯 양파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위잉 윙 소슬바람이 분다 詩作 노트:Costa Rica 사람들이 핸드폰을 귀에 대고 웃으며 길을 간다 혼자 웃는 폼이 환청 증세처럼 보이네 나도 공중전화기를 귀에 대고 폼을 잡는다 © 서 량 2024.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