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량 358

|詩| 나비넥타이

오 나는 빨간 나비넥타이 차가운 마우스피스에 키스하며 다시금 테너 색소폰을 치켜들며 메마른 리드를 매질하는 혀 오 나는 흐느끼는 날갯짓 vibrato 당신의 음정 떨림으로 와르르 무너지는 열 손가락이며 詩作 노트: 긴 음을 색소폰으로 연주할 때 비브라토가 절로 들어간다 노래할 때도 음정이 길수록 그렇게 된다 노래의 특징이다 © 서 량 2024.02.13

카테고리 없음 2024.02.13

|詩| 악보 읽기

악보 읽기 흩어지는 음정을 두루두루 매만지는 음감이 참 좋아andante 서두르지 말아라 일체  cello violin 2 clarinets 부응 지잉 삑삑絃 소리 숨소리를 세차게 껴안은 채 初見에 몰두하거라 입을 꼭 다문 채 은근한 집중든든한 미련의  힘으로 詩作 노트:대학 1학년 때 아우, 오누이와 다섯이 가정 악단을 조직했다. 피아노 치는 여동생이 사진에 찍히지 않았네. 소리만 들린다. © 서 량 2024.02.10

|詩| 춤추는 봄

춤추는 봄 떡갈나무가 뿌리를 치켜들고 물구나무서기를 했거든요 몸매 날렵한 종달새 한 마리 구름 너머로 날아갔거든요 바람 찬 해변 반짝이는 조약돌이 지난 가을 뒷마당에 매장된 낙엽이 후끈 달아올랐대 아이, 싫어, 싫어! 볼썽사납게 당신이 추는 개다리춤 詩作 노트: 개다리춤: 양다리를 마름모로 벌렸다가 오므리는 행동을 빠르게 반복 하면서 추는 춤 - 뜻이 궁금해서 굳이 사전에서 찾아 봤지. 기하학적인 설명이네. 눈에 선해. 봄춤은 알레그로 템포. 봄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 서 량 2008.04.18 – 2024.02.08

2024.02.08

|컬럼| 460. 딴소리

사람들은 딴소리를 곧잘 한다. 시인들이 완곡한 표현을 시에 쓰는 것도 정치가들의 입장문도 딴소리의 원칙을 따른다. 우리는 모두 우아한 말을 하고 싶다. 언어를 사용하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특권이다. 사전은 딴소리를 ➀주어진 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 ➁미리 정해진 것이나 본뜻에 어긋나는 말이라 엄격하게 풀이한다. 재미있다. 소리(sound)를 말(word)로 업그레드 시키는 사전의 자상한 마음가짐이. 대화 도중에 화제의 본질을 잠시 벗어나는 것을 애교로 볼 수도 있지만 내 환자들이 하는 딴소리는 ‘말’이 아닌 ‘소리’로 들리기가 쉽다. 북소리나 장구소리처럼! 증인석에 버티고 앉아 자꾸 딴소리를 하면 판사가 법정모욕죄 선고를 내릴 수도 있다. 심한 딴소리는 내 환자들의 특권이다. 동문서답의 병적인 쾌..

|詩| 빛이 없는 자리 2

빛이 없는 자리 2 빛이 함몰한 곳에 가보았다 세차게 끓어오르는 magnetic force 네 귀가 번쩍 들려 거무죽죽한 기와지붕 세찬 바람이 날개뼈를 흔드네 당신의 푹 꺼진 눈등 반듯한 이마 memory 빛이 내뿜는 nostalgia 등등 스며드는 적요가 좋았다 詩作 노트: 詩를 쓰다 말고 별안간 방의 불을 확 끈다 창밖 하늘 빛이 거무튀튀한 기와지붕이네 © 서 량 2011.08.31 – 2024.02.01

2024.02.01

|詩| 겨울, 무대에 서다

겨울, 무대에 서다 세상과 대적하는 큰 역할이라네 새까만 물개 살갗 턱시도를 입고서 뺨 시린 복숭아색 욕망을 꽁꽁 감추는 완전 무대 체질이었어요 당신이 새빨간 커튼 앞을 성큼성큼 걸어가는 베이지색 북극 곰 걸음걸이 詩作 노트: 14년 전에 스무 줄이었던 구질구질한 詩를 여섯 줄로 확 줄였더니 속이 엄청 시원하다 © 서 량 2010.01.07 - 2024.01.28

2024.01.30

|컬럼| 459. 심리치료

… 상징의 의미를 아무리 건드려 보아도/ 상징은 다시 살아나지 않음을/ 뒤늦게 전해드립니다/ 상징은 상징끼리만/ 오래 내통해 왔음을/ 제가 어찌하겠습니까… 2001년 본인 詩, 「사고현장」 나는 약물치료에 치중하는 정신과의사를 ‘druggist, 약사’라 부른다. ‘druggist’라는 앵글로색슨어는 ‘pharmacist’라는 라틴어보다 소탈하게 들리지만, 길거리 마약도 ‘drug’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어감이 좋지 않다. 되도록이면 심리치료에 의존하는 정신과의사를 ‘psychotherapist’라 한다. 약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체인 반면, 심리는 추상적인 컨셉이다. 약을 신봉하는 의사를 ‘유물론자, materialist’, 심리치료를 추구하는 의사를 ‘유심론자, mentalist’라 부르면서 유사시..

|詩| 빛기둥

빛기둥 -- 마티스 그림 “분홍색 드레스의 소녀”에게 (1942) 빛 몇몇 빛 뭉치 초록 기둥에 대항하는 눈금 검정색 가느다란 눈금의 힘 눈 코 입이 없는 분홍색 여자의 힘 덜커덕 공중으로 뜨는 의자 육중한 안락의자의 힘 詩作 노트: 1942년 어느 날 눈 코 입이 없는 마티스의 여자가 안락의자 끄트머리에 앉아 손으로 의자를 짓눌렀다 © 서 량 2024.01.19

|詩| 동맥피

동맥피 -- 마티스 그림 “모피 코트”의 여자에게 (1936) 여자 몸을 덮고 있잖아 주홍색 구름이 지열을 끌어들이는 구름이 숨이 콱콱 막히게 두툼하다 무더운 무릎이 의자를 휘감아 오르는 여린 소망이 왼손 위에 얹혀있는 오른손이 두툼하다 숨소리 들리잖아 칙칙한 숨소리 詩作 노트: 여자가 모피를 몸에 걸치면 동맥피가 떠오른다 그래서 마티스는 여자 치마를 새빨갛게 그린다 ©서 량 2024.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