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량 358

|컬럼| 458. 꼰대

초등학교때 ‘김대곤’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별명이 ‘꼰대’였다. 놀리기 좋아하는 또래들이 ‘대곤’을 ‘곤대’라 거꾸로 부르다가 꼰대로 바꿔 불렀던 것이다. 꼰대가 어른이나 아버지를 뜻하는 것으로 알았던 나는 왜 그 말이 우스웠는지 잘 몰랐다. 마침 또 대곤이는 어딘지 어른스러운 데가 있는 아이였다. 같은 나이 친구를 꼰대라 불러대며 아버지를 연상하는 게 재미있었겠지. 네이버 사전은 ‘꼰대’를,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라 풀이한다. ‘꼰대스럽다’는 형용사를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남을 가르치는 데가 있다”고 해석한다. 꼰대들은 훈장기질이 농후한 노인네들이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믿는 사람들. 꼰대는 젊은이를 얕잡아본다. 때때로 깔보는 태도를 취한다. 연장자들이..

|詩| 화려한 배경

화려한 배경 -- 마티스 그림 “장식이 많은 배경의 화사한 모습”의 여자에게 (1925) 명암이 선명한 직사각형 여자 몸은 벽에 걸린 액자, 액자다 나른한 팔다리, 팔다리를 옥색, 하늘색 배경이 보좌한다 양탄자를 억누르는 대퇴근까지 詩作 노트: 마티스 그림을 감상하며 부드러움을 배운다 세상 모든 것들이 부드럽다고 느끼는 방법을 © 서 량 2023.12.30

|詩| 원색

원색 -- 마티스 그림 “줄마”라는 이름의 여자에게 (1950) 전신을 청색으로 가린 여자 pink색, pink색 desktop에 몸을 기대는 중 원색 서넛이 화폭을 탈출한다 세차게, 세차게 살색 병아리색 green색, green색 벽을 꽉 채우는 기대감, 기대감 詩作 노트: 이 마티스 그림은 아주 이상하게 부드럽다 여자 몸이 꼭 고속도로 같다 하늘로 치솟는 © 서 량 2026.12.27

|詩| 무의식

무의식 -- 마티스 그림 “휴식하는 댄서”의 여자에게 (1940) 나뭇잎새가 가리는 벽 목탄화 캔버스 앞 빨간 머리 여자 얼굴이 늠름하기만 하다 기하학 원칙을 쫓으려는 새까만 바닥 옆 이등변 삼각형 다리가 아주 버젓해 그치 詩作 노트: 마티스 그림에 여자 얼굴을 살펴보면 말이지 드물지만 아주 늠름하고 떳떳한 표정이 있다 © 서 량 2023.12.23

|詩| 입술 언저리

입술 언저리 -- 마티스 그림 “보라색 볼레로 블라우스”의 여자에게 (1937) 눈 속에 듬뿍 찬 눈동자 까만 눈동자 옅은 그늘 엷게 어리는 목 여자의 목 흰 치마폭 굵은 주름이며 오른손 위 왼손이 부드럽다 보라색 볼레로를 부추기는 빨간 립스틱도 詩作 노트: 이 마티스 그림 속 여자는 눈이 황소처럼 보인다. 블라우스는 투우사가 입은 볼레로 조끼처럼 보여. © 서 량 2023.12.21

|詩| 눈이 큰 금붕어

눈이 큰 금붕어 -- 마티스 그림 “금붕어와 함께 벗다”의 여자에게 (1922) 환하다 금붕어 여자의 몸 명암이 뚜렷한 주홍색 살색 금붕어 세 마리 중 하나만 눈이 참 커요 좀 튀어나온 금붕어 눈을 잘 점검하는 여자의 눈 조그만 원형 탁자 위에 붉은 과일 오롯이 얹혀 있는 가운데 詩作 노트: 이 마티스 그림은 슬쩍 보아도, 자세히 보아도 좀 현혹적이다. 금붕어도 벌거벗은 여자도 자기네들이 그런 줄 모르는 가운데. © 서 량 2023.12.17

|詩| 만돌린의 태도

만돌린의 태도 -- 마티스 그림 “따바 로얄” 여자에게 (1943) Tabac Royal 따바 로얄 Royal Tobacco 흰 꽃병에 검정색 텍스트 참 귀족적이지 그치 깔끔한 콧수염 담배 냄새 샛노란 도어 옆 의자에 앉은 새하얀 드레스 여자 무뚝뚝한 만돌린 둘이서 대항하는 중이예요 부동자세로 詩作 노트: 마티스 그림 구성의 엉뚱한 면이 마음에 든다. 화가나 시인이나 좀 엉뚱한 데가 있어야 한다. © 서 량 2023.12.07

|詩| 눈빛

눈빛 -- 마티스 그림 “리디아 델렉토르스카야의 초상화”의 리디아에게 (1947) 어쩐지 웃고 있는 눈 노랑 파랑이 반반씩 차지하는 빛깔 절반 정도는 정말 말로 하기가 쉬워요 오렌지색 배경 초록빛에 싸여 긴장하며 진동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참 따스합니다 詩作 노트: 러시아를 혈혈단신 탈출한 리디아 델렉트로스카야. 1932년, 22살에 마티스 스투디오의 도우미로 고용된다. 그녀는 1941년에 소장암 수술을 받은 후 마티스가 불편한 몸으로 활동을 계속하다가 84살에 사망한 1954년까지 그의 곁에서 20여년동안 스투디오와 갤러리를 운영한다. 둘의 나이 차이는 40살. 마티스의 부인은 1939년에 가정을 떠난다. 시베리아 소아과의사의 딸 리디아. 파리 소르본 의대를 다니다가 학비를 대지 못해 중퇴한다. 마티스의..

|컬럼| 455. 문 닫고 지내기

문이 있고 통로가 있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잔디밭 돌길. 문이 반쯤 열려 있는 서재를 지나 반들거리는 복도가 부엌에 이른다. 문은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가는 칸막이를 상징한다. 문은 외부자극을 차단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오피스 문을 닫은 채 직장이나 연구실에서 열렬히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 추구하는 작업에 심취하여 몰아(沒我)의 경지에 빠지는 과학자나 예술가들은 남과 소통하고 싶은 기색을 도통 보이지 않는다. 페이퍼워크가 산더미로 쌓인 병원에서 컴퓨터를 두들기는 중 전화가 온다. 오래 소식이 없던 친구가 어떻게 지내냐 묻는다. 야, 나는 날이 가면 갈수록 ‘자폐증상, autistic symptom’이 도지는 것 같다, 하며 농담을 내뱉는다. 현대인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