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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꿈에 대한 보충설명

정신병은 건재한다 낮에 뜬 반달이 내게 눈길을 보내는 날,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돼 우리의 영혼이 안전한 길목에 접어든 증거입니다 앞이 안 보이는 마음에 들떠서 마구 들떠 허둥지둥 하늘 밖으로 쏟아지는 별무리를 잡으려 하더니 한사코 아주 평온한 기분이야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해 정신병의 갑옷이 당신의 영혼을 보호한다 든든해 아주 든든해요 반달이 내게 미소를 보내기 전, 멀리서 아주 멀리 작은 새 여럿이 떼를 지어 날아갑니다 효험 있는 약을 외면한 채 이토록 생생한 꿈의 막바지 끈을 놓지 못하는 우리들 때문에 © 서 량 2018.06.17 -- 2019년 겨울호

발표된 詩 2021.04.01

|詩| 눈을 45도 각도로

나쁜 꿈이 잠시 생시에 떠오르면 자네는 눈을 아래로 비스듬히 떨구시게 옴짝달싹 하지 않는 생각의 갈피 들쑥날쑥한 숨길을 토닥거리는 손길 어정쩡한 상대를 마다하지 않는 마음 가짐 꼬박꼬박 올라오는 댓글들 투박한 살결을 건드리는 소슬바람 가을바람 아 참 그랬구나 하며 외치기 직전 딩동댕 정답입니다 하는 희열 등등 벌건 대낮에 흑백 사무라이 영화의 한 장면이 불쑥 떠오른다면 자네는 눈을 아래 쪽으로 슬쩍 내리시게 마법의 주문을 뺨치는 45도 각도를 취하면서 © 서 량 2020.10.16

2020.10.16

|詩| 가상현실

내 밑바닥에 누워있는 당신의 진실을 보았다 한편의 시를 쓰고 싶은 욕망 때문에 눈을 감는 순간 매서운 채찍질과 빠르고 음산한 배경음악에 박자 맞추어 온몸으로 눈보라를 뚫고 질주하는 저 북극의 개, 울부짖는 늑대 떼보다 몇배 더 성급한 개떼, 내가 개 여러 마리로 길길이 둔갑하여 썰매를 끌고가는 흑백의 화면을 보았다 한밤중에 한껏 지구를 가로지르고 싶은 내 주인의 희열을 위하여 © 서 량 2017.03.30 --- 2020.06.07

2020.06.08

|詩| 쟁반만한 눈

쟁반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라면 쟁반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해 쟁반이 하늘을 바라보며 누웠다가 기립자세로 감정조절에 나선다 쟁반은 속 깊은 영혼이라네 쟁반의 마음을 보듬자면 자기 마음부터 보듬어야 해요 쟁반이 눈을 부라린다 나는 입술을 깨문다 쟁반이 꿈을 꾸는 중이야 나는 쟁반의 극심한 악몽이다 나는 쟁반의 기꺼운 악몽이다 I am your hottest nightmare I am your best nightmare © 서 량 2014.05.11

2014.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