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56

겨울아침 / 김정기

겨울아침 김정기 서로 잡아당기고 있는 물살이 손을 놓고 공중을 바라보는데 아득한 것들이 돌아와 한자리에 앉는 안온함이 열리는 창안에 가득하다 서리 내린 언덕을 올라가 지난밤 촛불 밑에서 쓴 편지를 부친다 가벼운 코트와 걷고 있는 것도 죄스러운 겨울 아침에 청솔가지에 앉은 싸락눈이 눈빛을 환하게 마주 본다 다시는 봄을 잉태 하지 못할 듯 깊은 잠을 깨우는 새소리는 완강해 지구의 자궁 안에서 새것들이 태동하는 소리 또렷하게 들린다 © 김정기 2009.12.22

깊은 겨울 눈 이야기 / 김종란

깊은 겨울 눈 이야기 김종란 눈은 온다 모든 올 수 없는 것 만날 수 없는 것 위하여 눈은 와서 펑펑 내린다 갑자기 멀리서부터 잿빛으로 어두어지다가 불현듯 화안하게 온다 누군가 몰래 악기를 연주해 주듯 살쾡이처럼 뛰어드는 재앙의 상흔도 점점이 사라져가는 숨은 음악 두 눈을 가리는 아가의 손처럼 말랑말랑하게 다가와 나의 폐허를 가려준다 흰 손가락으로 검은 웅덩이를 지우고 붉은 눈동자를 지우고 해어진 여행가방을 지운다 뭐 더 없어 하면서 코끝이 시리게 웃는다 힘들게 있는 것들을 그저 하얗게 덮은 후 서늘한 몸짓으로 따뜻한 뺨에 다가와 녹는다 이미 없었던 것을 대변하듯 시리게 다가와 사라진다 함박눈은 헐벗은 것들을 사랑한다 가장 야윈 것 위에 더 포근하게 쌓인다 사라지는 것 볼 수 없는 것들을 조곤조곤 이야기..

겨울 도시 / 김정기

겨울 도시 김정기 혼자 썩어가는 영하의 노을 회색 장막을 치고 문을 닫는다 두 줄기 양란을 배달하는 아이의 발걸음에서 빠르게 와버린 겨울의 속살이 보인다. 공원의 나무들 눈물겨운 숨소리 땅에 묻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안개로 서려온다, 뼈아픈 것끼리 이루는 화음이 헐거워진다. 겨울 박물관에서는 엉겅퀴 꽃 한 송이에 모든 햇빛을 쏟아 붇는다. 낯익은 한글 간판이 목청껏 소리 지르는 한인 타운에서도 동행이 없이 스스로 작아지는 어둠이었다. 30번을 맞는 겨울이건만 타관은 타관이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찬바람이 와서 손을 잡는다. 그래도 붙잡혔던 우리 집 단풍나무 잎새 몇 잎이 짧은 겨울 해 어깨위로 조용히 몸을 눕힌다.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식이다. 그러나 도시는 더욱더 현란해진 불빛에 취하여 비틀거..

|詩| 웃통을 벗어 던지고

겨울과 봄 사이에 증세가 악화됐어 웃통을 훌렁 벗은 사내가 야구공을 치는 자세로 치는 징, 징 소리 살갗에 샛노란 버터를 처바른 커다란 달 덩어리가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있구나 큰 테러 사건이 터지기 전, 한참 전부터 시간과 시간 사이에 찡겨서 빼도 박도 못하면서 울리는 징, 징 소리가 마냥 울린다 고막이 아파요 꿈의 안과 밖 사이를 과도기 현상이라 부른대 겨우내 가부좌를 틀고 참선을 하며 오늘과 내일 사이를 파고드는 환상, 수상한 환상만 쫓다가 봄기운 본능으로 험악한, 아주 험악한 자세를 취하는 겁니다 열 올라 내 생각이 틀림이 없단 말이야 살갗을 홀랑 태우는 여름 땡볕의 위력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관계로 날이 가면 갈수록 증상이 도지고 있다네 생각과 생각 사이를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시작 노트: 오..

2022.03.06

|詩| 겨울 냄새

아까부터 겨울이 부스럭거려요 벌거숭이 팔을 흔들며 창밖에서 떡갈나무들이 부르는 합창을 듣고 있어요 그러다가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 중간에 나오는 트럼펫 솔로가 따따따 울립니다 지금 진눈깨비가 어깨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잖아요 신바람나는 개다리춤, 내가 좋아하는 개다리춤, 그러다가 살려주세요, 하는 애원으로 이어집니다 아까부터 내 쪽으로 다가오는 은빛, 신선한 은빛 기류(氣流)를 맞이하고 있어요 나 지금 © 서 량 2021.01.02 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071542 [글마당] 겨울 냄새 아까부터 겨울이 부스럭거려요벌거숭이 팔을 흔들며 창밖에서떡갈나무들이 부르는 합창을 듣고 있어요그러다가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중간에 나오는 트럼펫 솔로가따따따 울립니다지금..

발표된 詩 2021.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