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웃통을 벗어 던지고

서 량 2022. 3. 6. 19:54

 

겨울과 봄 사이에 증세가 악화됐어 웃통을 훌렁 벗은 사내가 야구공을 치는 자세로 치는 징, 징 소리 살갗에 샛노란 버터를 처바른 커다란 달 덩어리가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있구나 큰 테러 사건이 터지기 전, 한참 전부터 시간과 시간 사이에 찡겨서 빼도 박도 못하면서 울리는 징, 징 소리가 마냥 울린다 고막이 아파요 

 

꿈의 안과 밖 사이를 과도기 현상이라 부른대 겨우내 가부좌를 틀고 참선을 하며 오늘과 내일 사이를 파고드는 환상, 수상한 환상만 쫓다가 봄기운 본능으로 험악한, 아주 험악한 자세를 취하는 겁니다 열 올라 내 생각이 틀림이 없단 말이야 살갗을 홀랑 태우는 여름 땡볕의 위력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관계로 날이 가면 갈수록 증상이 도지고 있다네 생각과 생각 사이를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시작 노트:

오래 전에 쓴 시가 조잡하고 거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군데를 다듬고 순화시켰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상대하고, 나를 상대해 주는 대상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는 상상에는 변함이 없다. 세상이라는 대상이 심포니를 연주한다. 4악장이 끝나면 내 박수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곡 선정은 지휘자의 재량에 딸렸다.

 

© 서 량 2011.03.10 – 202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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