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겨울 눈 이야기
김종란
눈은 온다 모든 올 수 없는 것
만날 수 없는 것 위하여
눈은 와서 펑펑 내린다
갑자기 멀리서부터 잿빛으로 어두어지다가
불현듯 화안하게 온다 누군가 몰래 악기를 연주해 주듯
살쾡이처럼 뛰어드는 재앙의 상흔도 점점이 사라져가는
숨은 음악
두 눈을 가리는 아가의 손처럼 말랑말랑하게
다가와 나의 폐허를 가려준다
흰 손가락으로 검은 웅덩이를 지우고 붉은 눈동자를 지우고
해어진 여행가방을 지운다
뭐 더 없어 하면서 코끝이 시리게 웃는다
힘들게 있는 것들을 그저 하얗게 덮은 후 서늘한 몸짓으로
따뜻한 뺨에 다가와 녹는다
이미 없었던 것을 대변하듯 시리게 다가와 사라진다
함박눈은 헐벗은 것들을 사랑한다
가장 야윈 것 위에 더 포근하게 쌓인다
사라지는 것 볼 수 없는 것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 김종란 200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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