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란의 詩모음

깊은 겨울 눈 이야기 / 김종란

서 량 2022. 12. 10. 18:53

 

깊은 겨울 눈 이야기

 

                  김종란

 

 

눈은 온다 모든 올 수 없는 것

만날 수 없는 것 위하여

눈은 와서 펑펑 내린다

갑자기 멀리서부터 잿빛으로 어두어지다가

불현듯 화안하게 온다 누군가 몰래 악기를 연주해 주듯

살쾡이처럼 뛰어드는 재앙의 상흔도 점점이 사라져가는

숨은 음악

두 눈을 가리는 아가의 손처럼 말랑말랑하게

다가와 나의 폐허를 가려준다

흰 손가락으로 검은 웅덩이를 지우고 붉은 눈동자를 지우고

해어진 여행가방을 지운다

뭐 더 없어 하면서 코끝이 시리게 웃는다

힘들게 있는 것들을 그저 하얗게 덮은 후 서늘한 몸짓으로

따뜻한 뺨에 다가와 녹는다

이미 없었던 것을 대변하듯 시리게 다가와 사라진다

함박눈은 헐벗은 것들을 사랑한다

가장 야윈 것 위에 더 포근하게 쌓인다

사라지는 것 볼 수 없는 것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 김종란 2009.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