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오이와 오렌지* 12월 말에 새 달력을 뜯는다 내일을 위하여 오늘 껍질을 찢는 우리들 한밤중에 몸에 좋은 오이를 먹다가 졸지에 오렌지가 먹고 싶다 불을 지피지 않은 벽난로 앞에 앉아 오렌지 껍질을 깐다 오렌지 껍질을 깐 손가락이 풀풀 풍기는 생선 비린내, 12월 말에 벽에 달린 달력이 잉어처럼 펄떡.. 詩 2007.12.18
|詩| 딩동댕 행당동** 하늘이 온통 회색 빛으로 가라앉는 겨울 아침에 베토벤의 피아노 열정 소나타 3악장을 듣는다 국도 87번이 뉴욕주 남북으로 쭉 뻗은 하이웨이 기왕 이리 된 바에야 겨울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겠어 열 살을 갓 넘어 앞마당 장독대에 새파란 하늘이 반들반들 비치던 투박한 간장 항아리 그.. 詩 2007.12.17
|詩| 한겨울* 내 겨울은 얼음장 사랑이다 휘영청 달밤 강물에 떠나가는 사다리꼴 얼음판 쪼가리다 무심코 만지면 쩍쩍 달라 붙어 살점 뚝뚝 떨어지는 차마 눈 뜨고 못 보는 슬픔이다 내 겨울 얼굴은 동물 사랑이다 투실투실한 어깨를 부르르 떨면서 새파랗게 얼어붙은 눈송이로 나뭇가지 잔가지에 매.. 詩 2007.12.16
|詩| 숨바꼭질** 술래가 시들해져서 숨바꼭질 도중에 훌쩍 집에 가 버린다면 큰일이다 정말 술래한테 잡히기를 기다리며 술래한테 잡아 먹히는 동물 환상으로 허벅지에 왕소름이 쑥쑥 솟는 사이에 해는 서산에 지고 당신 이마에도 시커먼 땅거미 지고, 아직도 보인다 거무죽죽한 겨울 나무들 꼼짝달싹하.. 詩 2007.12.11
|詩| 뜨거움* 뜨거움이 나를 떠남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걸 나 깜박 잊어버렸지 뻔뻔스럽게도 청춘을 돌려달라며 소리치는 나훈아 구성진 유행가가 우리들 이마를 후줄근하게 때리는 순간조차 이제는 홀연히 가고 없고 칙칙한 파도가 흰 이빨을 드러내는 여름 밤이며 연꽃보다 찬란한 가을 아침이며 .. 詩 2007.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