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일기예보 숭늉에 둥둥 뜬 누런 누룽지 구름 덮인 지구를 작게 크게 여러 각도로 보여 주며 일기예보 하는 TV 화면의 멀끔한 남자가 말이 몹시 빠르다 그가 말을 다급하게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혹시 없다 해도 고만이지만 내가 귀담아 듣거나 말거나 당신이 하는 말은 빠르면 빠를 수록 특히 .. 발표된 詩 2007.11.10
|詩| 서머타임 쓰러지다 성미 괄괄한 여름 하늘을 뭉게구름이 떠나지 못한다 조개구름들이 판을 치던 기미가 남아있다 진하게 아직도 흔적이란 뚜렷한 미련 혹은 옹고집 풍만한 가을이 제대로 가을답던 가을이 뉘엿뉘엿 기우는 10월 말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면 시간이 툭 부러진다 대퇴골 복합골절이지 시간은 송편 같은 눈 .. 발표된 詩 2007.11.05
|詩| 나뭇잎 불꽃 가을에 세수할 때 한두 번씩 코피가 나온다 추수감사절 가까이 오면 늘 사업에 실패하던 막내삼촌과 이혼했다 소문난 옛날 애인과 자존심 때문인지 우정을 버리고 돌아선 친구도 생각이 나는 법이다 이들은 지금 소식이 두절됐으나 십중팔구 죽지 않았으며 지금도 한결 같은 뜻 애오라지 연삽한 소망.. 발표된 詩 2007.10.31
|詩| 과격한 언사 정원에 돌덩어리들이 마구 뒹굴고 있다 맑은 날이면 노랗게 뵈는 돌덩어리들 돌덩어리 입술들이 정맥 빛으로 내 위에 쌓인다 차곡차곡 혹은 느슨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세요 언중유골, 등허리 딱딱한 힘살에 아픈 진실의 가시가 박히는 장면입니다 과격한 언사를 쓰세요 괜찮아요 차분한 말일랑 .. 발표된 詩 2007.10.29
|詩| 빨강머리 글로리아 빨강머리 글로리아가 서른 중반에 이혼하고 마흔 좀 넘어서 수면발작(narcolepsy) 증세가 오기 시작한 거야 나이 많은 애인과 얘기를 하다가 수퍼마켓 계산대 앞에서 혹은 혼자 길을 걷다가 느닷없이 잠에 빠지는 병 평화롭게 숙면하는 고운 잠이 아니고 불시에 전신근육이 마비되면서 순식간에 잠의 수.. 발표된 詩 2007.10.25
|詩| 밤의 종말 새벽 수증기로 사라지는 이슬의 숙명을 노래하면서 머리를 조아리는 밤의 종말 시력이 침침해지고 청각이 점점 맑아지면서 에헤야 은하수 뱃노래 쿨렁쿨렁 흐르는 굵직한 첼로 독주와 쿵쾅대는 엄마 심장 뛰는 소리에 다소곳이 귀 기울이는 자궁 속 눈이 생선 같은 태아의 평온을 위하여 당신 어깨가.. 발표된 詩 2007.10.23
|詩| 밤바람 밖에서 부는 바람이 훈훈해, 안은 차가워요 괴이한 짐승 소리 들립니다 한참을 꺼이꺼이 울부짖던 세상이 별안간 잠잠해졌어요 소나기가 뚝 그쳤을 때처럼 원숭이 같기도 늑대 같기도 무식하고 무자비한 짐승, 구슬픈 짐승, 오밤중 내 의식 속으로 부리나케 뛰어드는 충동, 이건 철부지로 낑낑대는 강.. 발표된 詩 2007.10.18
|詩| 수압(水壓) 유황이 슬금슬금 꽃으로 피어나는 바다 밑 아무리 괴롭다 하소연해도 들은 척 만척하는 구정물 속으로 말미잘이며 짚신벌레며 산호 부스러기가 마음 약한 영혼처럼 부유한다 이빨이 날카로운 망치머리상어가 비틀비틀 꼬리춤을 추면서 나를 통째로 잡아 먹는 실루엣을 본다 꾸루룩꾸루룩 푸른 물방.. 발표된 詩 2007.10.14
|詩| 마중물 나 어제 그런 생각을 했어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지만 그건 겉으로만 그렇다는 거 머나 먼 밤하늘 별무리를 그렇게 노려본들 그게 무슨 소용이니 대답해 봐 진짜 정말로 진솔한 건 만지는 거 나 당신을 마음 놓고 만지기 위해 당신을 마중 나간다 물과 물이 시선과 시선처럼 섞일 바에야 나 지금도 그 .. 발표된 詩 2007.10.11
|詩| 교태 비에 젖은 단풍잎 색 빨간 잇몸을 보이며 그녀의 편안한 입 꼬리가 올라간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요 그녀는 허전한 백색 무명 냅킨으로 입 언저리를 훔친다 하고 싶은 말과 안 하고 싶은 말이 먼 천둥처럼 부딪치는 순간 몸에 꼭 끼는 윗도리를 입은 웨이터의 말이 빗방울처럼 .. 발표된 詩 2007.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