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2. 까만 안경

서 량 2007. 9. 8. 04:06

 까마득한 옛날에 원시인들은 동굴에서 살면서 밤을 무서워했다. 깜깜한 밤이면 육식동물들이 굴에 들어와 그들을 물어뜯거나 잡아먹기도 했으리라. 눈부신 한낮에 푸른 들판을 뛰어다니던 원시인들은 어둠이 마냥 싫었다. 그래서 그들은 검정색을 꺼려했다.

 

 ‘black’은 나쁜 뜻 투성이다. black sheep (말썽꾸러기), blackout (필름이 끊긴 상태), blackmail (협박), black market (암시장), black eye (맞아서 꺼먼 눈 자위) 따위가 좋은 예다. 14세기 중반에 유럽을 휩쓴 흑사병(黑死病)도 ‘Black Death’라 했다. ‘black widow (검정 과부?)’는 암거미가 성교가 한 후 수거미를 잡아 먹은 후 즉석에서 ‘과부’가 되는 무시무시한 흑거미의 자태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요즘에는 남자를 능가하는 여자를 ‘black widow’라 한다. 세계 당구계의 거성인 대한의 딸 제닛 리(Jeanette Lee)와 세계 ‘먹기 대회’에서 남자들을 압도하는 이선경(미국 이름: Sonya Thomas)을 우리는 ‘흑거미’라 부른다.

 

 우리 말에서도 검은 색은 좋지 않은 뜻으로 자주 쓰인다. 노름꾼들의 속어에서 ‘흑싸리’는 남의 일에 훼방을 잘 놓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흑심(黑心)을 품었다는 말은 음흉한 마음을 먹었다는 뜻. 근묵자흑(近墨者黑)은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 즉, 나쁜 사람과 가까이 하면 나쁜 행동에 물들기 쉽다는 사자성어(四字成語)다.

 

 그러나 ‘black’에는 좋은 뜻도 많이 있다. 어느 가을 저녁 댄스파티에 당신은 검정 나비넥타이와 아래 위 검정 옷을 입고 등장할 것이다. 당신이 비탄에 잠기는 장례식에서도 맛좋은 포도주에 취해 껄껄대는 화려한 디너파티에서도 하나같이 까만 옷을 입는다는 것이 참으로 역설적이다. 캄캄한 밤처럼, 검정색은 환희와 슬픔을 동시에 대변한다.

 

 또 있다. 경마에서 유래한 말로서 역량 미지의 실력자, 쟁쟁한 경쟁자를 뜻하는 ‘dark horse, 검정 말’이라는 단어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도 검정색은 아주 훌륭한 의미로 대두한다.

 

 ‘black’은 고대영어에서 ‘불에 태우다(burn)’는 의미로 쓰였다. 불이 타는 동안은 불꽃이 하얗게 작열하고 불이 꺼진 다음에는 시커먼 숯과 재만 덩그러니 남는 장면을 눈 앞에 그려보라. 그래서인지 중세에 들어서서 ‘black’은 ‘비었다 (blank)’라는 뜻이 첨가 되면서 흰색을 뜻하기도 했다. 아직도 ‘표백제’라는 뜻의 ‘bleach’가 현대영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몽불랑 (Mont Blanc) 만년필이나 볼펜도 영어로 번역하면 ‘white mountain (하얀 산)’을 뜻하지만 불어의 ‘몽블랑’이 사실은 ‘검정 산’이라는 뜻과 상통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극과 극은 열렬히 상통한다. 밤과 낮이, 바보와 천재가, 해와 달이, 슬픔과 기쁨이, 남자와 여자가, 자애와 타애가, 사랑과 증오가, 염원과 공포가, 비극과 희극이, 삶과 죽음이 바로 이 순간에도 상통하고 있다.

 

 최근 23살의 ‘이루’가 부른 히트 곡 ‘까만 안경’ 가사의 일부분을 여기에 옮긴다. ‘까만 안경’에 잇달아 그 다음 히트 곡은 ‘흰 눈’이라는 사실 또한 놀랍다. 당신은 곰곰이 가사를 음미하면서 흐느끼는 그의 하소연을 들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몸부림치며 떠나고 난 칠흑 같은 밤에 새까만 안경으로 눈을 가린 채 눈물을 줄줄 흘리는 절망의 극치에 공감할 것이다. 까마득한 좌절이 새벽녘 동이 트는 하얀 축복으로 다시 태어나는 흑과 백의 조화가 신비롭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면서.

 

 -- ♪ ~~까만 안경을 써요 아주 까만 밤인데 말이죠
앞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는 울고 싶을 뿐이죠
한 여자가 떠나요 너무나 사랑했었죠
그래요 내 여자에요 내 가슴 속에서 울고 있는 여자 ♬~~ --


© 서 량 2007.02.19
-- 뉴욕중앙일보 2007년 2월 21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