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gar’는 기원전 300여년 전에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를 쳐들어 갔을 때 병정들이 ‘벌이 없이 만든 꿀 (honey without bees)’이라 불렀던 산스크릿어(범어)의 ‘sharkara’에서 유래된 단어다. 이태리의 말코 폴로가 국수를 중국에서 가져갔듯이 유럽인들은 설탕을 인도에서 가져간 것이다.
인간이 감지하는 다섯 가지의 기본 맛은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매운맛이다. 이 중에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맛은 물론 단맛. 비근한 예로 ‘honeymoon’, 꿀 밀자에 달 월자를 붙여 쓴 ‘밀월(蜜月)’여행이 있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즉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교훈이 담긴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격언도 단맛에 역점을 둔다.
1350년경부터 쓰기 시작한 영어의 ‘honey’는 참 감각적인 표현이다. 이것을 번역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꿀’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요새는 우리도 그냥 “허니~” 하며 수입된 말을 쓴다. ‘달콤한 심장’이라는 뜻으로 16세기 말에 시작된 ‘sweetheart’는 또 어떤가. 양키들이 서로 입맛을 짭짭 다셔가면서 서로의 마음을 맛보는 정경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하기야 그들의 구강(口腔)문화나 멀쩡한 주택가에 해장국, 김밥, 아구찜, 해물잡탕, 갈비찜, 설렁탕, 삼겹살, 낙지덮밥 등등을 창문에 써 붙이고 밤낮으로 우리의 형제자매를 서브하는 음식점들이 빼꼭한 우리의 ‘먹자골목’ 문화나 사실은 오십보백보다. 양키들은 단맛을 눈에 불을 키고 밝히고 우리는 아무거나 잘 먹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라고 점잖게 웨치면서.
1920년대에 생긴 말 ‘sugar daddy (설탕 아빠?)’는 젊은 여자와 연애하는 나이 많고 부유한 남자를 뜻한다. 1936년에 발간된 희대의 명작 마가렛 밋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처음 사용된 관용어 ‘sweet-talk (달콤한 말로 꾀다)'도 단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심리를 잘 드러낸 표현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상대가 삼키기 좋게 당의(糖衣)를 입혀서 잘 말하는 것을 ‘sugarcoat’라고 한다. ‘감언이설(甘言利說)’이나 ‘사탕발림’이라는 우리말도 같은 맥락이다.
‘bitter’는 ‘bite’에서 유래된 말. 음식을 깨물면 우선 처음에 쓴맛이 나는 것일까. 그래서 요새처럼 칼바람이 살갗을 에는 혹한을 ‘bitter cold (쓴 추위?)’라 한다. 양키들 몸에서는 겨울에 쓴맛이 난다.
사람의 성향을 묘사할 때 우리는 단맛에 중점을 두지 않고 각종 맛을 골고루 적용시킨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성격에 대한 논평이고 ‘짠돌이’는 구두쇠라는 뜻이고 그 반대기질이 농후한 사람은 ‘싱겁다’ 하고 ‘사람이 맵고 짠 데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있고 다른 사람의 행동이 못마땅하면 눈꼴이 ‘시다’고 당신은 낮게 중얼거린다. 자기의 인생경험을 내세우며 남에게 으름장을 놓으면서 ‘단맛 쓴맛 다 봤다’ 하고 상대를 협박할 때는 ‘너 화끈한 맛 좀 볼래?’ 하며 소리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인지상정이긴 하지만 오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입맛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음식이고 사람이고 간에 이렇듯 애지중지 맨날 치사하게 맛에 매달려 살아야 하나.
당신도 한 번 생각해 보라. 신라의 원효(617~686)가 34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도중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 집으로 돌아온 그 결정적인 경험이 과연 무엇이었던가. 고갈이 심했던 그가 해골에 고여 있던 물을 마셨고 그 맛이 꿀맛이었고 다음날 아침에 그게 썩은 구정물이라는 사실을 통감했다는 기록은 우리에게 무슨 메세지를 주었던가.
좀 있으면 발렌타인즈 데이다. 쌉쌀한 맛이 배경에 깔리면서 단연코 단맛이 미각을 압도하는 몇 개의 초코렛을 입안에 넣으며 당신은 원효가 체험했던 그 꿀맛 같은 인생의 희열을 포착할 수 있겠는가.
© 서 량 2007.02.07
-- 뉴욕중앙일보 2007년 2월 7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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