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13

|컬럼| 252. 눈 속의 무당벌레

2016년 1월 23일, 토요일, 뉴욕에 20인치가 넘게 폭설이 내렸다. 뉴욕 시장 빌 드블라지오는 아침 일찍 티브이에 나와 위태로운 도로사정을 예고하면서 절대 집밖에 나가지 말라며 "Stay home!" 하고 힘주어 말했다. 생체가 스트레스에 처했을 때 일으키는 원초적 반응을 생리학에서 "Fight or Flight"라 한다. 위기와 맞붙어 맹렬히 싸우거나, 힘이 딸려 여의치 못하는 경우에 오금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을 치는 원리다.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다. 그것은 즉 싸우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그 자리에 요지부동으로 있는 제3의 수법. 그날은 폭설과 싸울 수 없었고 열대의 섬으로 피신하고 싶어도 비행장으로 가는 도로가 완전 폐쇄된 날이었다. 미국인들이 개에게 "Stay!" 하고 소리치면 그것은 꼼..

미니 카 / 김종란

미니 카 김종란 두런두런 눈빛들을 싣고 엇갈려 지나는 장난감 미니 카 미소의 테이블은 넓다 밤은 깊어 가니 뜻 없는 미소들로 지운다 소리 지르지 않는 무게 어두움에 깊이 안긴 돌 울음 미니 카를 쥔 작은 손 손가락 마디마디 자라며 폭설이 내리고 네가 견딘 땀방울 방울 창문에 휘영청 빛이다 노란색 파란색 미니 카 장난감 집 풍경 © 김종란 2015.08.13

*흰 러닝셔츠 / 폭설 -- 김종란

흰 러닝셔츠 / 폭설 김종란 죽은 듯 침대에 누운 겨울 입김 후 불면 거울에 드러나는 겨울 침대 끝에 떨어져 있는 마른 손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옮기는 마른 발걸음 이미 높이 자란 사유의 나무에 기대어 땀 닦아 내는 푸른 웃음 해 기울도록 마룻장 걸레질 하는 동안 다시 해 떠올라 온 종일 물 긷는 동안 자유로이 거울 안 바람 소리 시원하고 글 쓰는 소리 사각인 다 잠시 몸 비워 두고 보이다가 보이지 않는 거울 흰 러닝셔츠 바람 글 쓰는 어깨 위로 폭설이다 *잠시 겨울에 잠든 김기천 시인에게 © 김종란 2015.01.19

성냥개비 집 / 김종란

성냥개비 집 김종란 내 손안에 드는 집 눈이 내린다 몇 송이 눈에 휘청인다 새끼 손가락으로 대들보를 받쳐준다 무너지더라도 눈이 펑펑 내렸으면 협궤열차가 달려와 눈의 마을에서 조그많고 반질반질한 탁자위로 달려와 미끄러질 듯 덜컹거리며 멈춘다 기다림의 집 모든 작은 것은 서로를 떠받치며 균형을 잃어 밀리며 뒤로 벌러덩 자빠져도 소리가 없다 눈이 속마음에서부터 펑펑 쏟아져 눈사태를 이루면 창문의 얼룩을 손끝으로 살짝 밀어 본다 폭설의 집 무너져 내리며 부딪히며 잠시 나르기도 하는 집 가벼웁고 쉬이 사라지는 눈이 내리면 폭설이 내리면 불의 기호들이 모여 춤추는 집 눈 속에 파묻혀도 뜨거운 집 © 김종란 2010.12.24

|詩| Deep Scan

뚱뚱한 미국인이 전하는 TV 일기예보 언어의 속도, 언어의 마술 폭설의 요술이 덮치는 뉴욕 1월 마지막 주말 포스트모더니즘 미국 지도 앞에서 뚱뚱한 미국인이 말한다 “여론조사, 여론조사” 그는 다시 말한다 “兩者토론, 兩者토론” 그는 내 이중언어를 급히 해체하고 조립한다 짐승이 우는 소리, 폭설이 앞뜰에 군림하고 있어 기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무서워요 바이러스 제거 소프트웨어가 하드 드라이브를 deep scan 하는 동안 아마존에서 하이킹 슈즈 한 켤레를 주문해야겠어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뒷꿈치에 주홍빛 티눈이 박힌 투박한 카키색 가죽구두를 시작 노트: 언젠가 포스트모더니즘은 박물관에 진열될지도 몰라. 초현실주의처럼 말이지. 꿈을 토대로 한 예술품을 창작할 수 있지만 '꿈自體, dream-in-itsel..

2022.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