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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6개월에 걸친 시작노트

서 량 2013. 5. 11. 12:10

12월에 부는 바람

 

미국에 근 40년을 살아온 동안 매해 연말이 가까워 질수록 부산스럽고 조급해진다. 특히 지난 해 12월은 내가 일하는 뉴욕 주립 정신병원이 예산 삭감 때문에 구조조정을 하는 바람에 병동이 폐쇄되고 의사들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형국이었다. 의사들의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환자들이 공연히 화를 내고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잦았다.

 

그러던 어느 날, 촌각을 다투는 아침 출근 시간에 야외 주차장에서 빌딩 문까지 걸어가는 동안 찬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마침 또 그날 오후에 폭설이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머플러가 펄펄 흩날리는 바람 속을 걸으면서 전날 밤에 본 한국 티브이 사극에서 고려군과 몽고군이 깃발을 펄럭이며 결전하기 직전에 서로를 뚫어지게 노려보는 황량한 벌판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갑자기 목이 서늘하고 기분이 서글퍼지면서 야, 이걸 시로 옮기면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시가 될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말이 틀릴 수도 있지만, 그리고 나 자신도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 시는 역시 상처나 아픔처럼 슬프거나 불쾌한 정서를 소재로 잡으면 잘 먹혀 들어간다는 선입견을 버릴 수가 없다. 사실 그날따라 폭설이 무서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속 어디에선가 융(Jung)의 아니무스(Animus - 의식 속의 남성적 요소)와 아니마(Anima - 의식 속의 여성적 요소)가 서로 속살대는 대화를 엿들었다. 결국 나는 꽤나 사내다운 언성으로 겨울의 시련에 대하여 투덜거린 후 3연에서 개성이 강한 여자말투를 쏟아냈다.

 

 

1월의 폭설

 

한 달 정도 지나서 1월에 뉴욕에 또 폭설이 있었다. 그 즈음 병원 분위기는 좀 나아졌고 내가 직업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고 환자들도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보이기 시작했다. 폭설이 내리던 밤에 베란다의 외등을 켜 놓고 무섭게 휘몰아치는 함박눈의 소용돌이를 구경했다.  

 

따스한 실내에서 보는 옥외의 눈보라는 매우 매혹적이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며 동영상을 마구 찍는다. 내 밖에 존재하는 사나운 물상들이 참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의 시 '인간에 대한 수필 (An Essay on Man)'에 나오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다 정당하다 (Whatever is, is right.)"는 구절이 사무치게 새로워지는 밤.

 

우리가 가끔 하는 욕설도 뜻 없이 짓는 포근한 눈빛도 제각각 타당성이 있으려니 한다. 파리한 얼굴로 문학청년 행세를 하던 먼 옛날에 나도 예쁘고 섬세한 언어만으로 시를 쓰려고 애를 쓰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 욕심이 아주 없어졌다. 차라리 거칠고 생경한 어휘에 마음이 쏠린다. 이것은 늙음의 소치라기보다 사물에 대한 편견이 많이 없어진 심리적 성숙도를 입증하는 것으로 당신이 이해해 줬으면 하는데. 

 

 

2월의 미련

 

2월에는 어정쩡한 광도(光度)가 매일 썰렁하게 계속되면서 점점 멀어지는 겨울에 대한 뚜렷한 미련이 생긴다. 2월의 한 복판 14일은 서로 좋아하는 남녀들이 코 앞에 다가오는 춘정(春情)의 예감을 견디지 못해서 사랑의 상징인 장미꽃을 주고 받는 발렌타인즈 데이(Valentine's Day)다. 2월은 설렘을 감추면서 무언가 기대하고 대비하는 달이다. 

 

마침 또 우연히도 내가 운영하는 '성격 장애' 병동이 완전히 폐쇄되는 절차를 자세히 명시한 계획서가 뉴욕 주 상부에서 내려왔다.

 

내 환자들은 근본적으로 성질이 더럽고 고약한 관계로 큰 잘못이나 비행을 저지르고 정신병동에 체류하는 사람들로서 얼른 봐서는 정상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 몇몇은 서둘러 퇴원을 준비했고 나머지는 좀 더 원초적 정신질환, 이를테면 정신 분열증이나 양극성 장애 (Bipolar Disorder) 환자들이 머무는 병동으로 뿔뿔이 흩어져 흡수되는 상황이 터진 것이다. 과거와 결별하는 절차에 몰입하는 순간 과거를 향한 향수심이 엄습해 온 2013 2월이었다.

 

성격장애가 심한 사람들은 스스로가 아픔과 좌절을 겪는 것보다 남들이 자기들의 불행을 몸소 체험하게끔 사태를 몰고 가는 기질이 있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한 마디로 말해서 완전 놀부 심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매사에 집념과 고집이 강하고 미련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웃는 낯으로 예정보다 훨씬 앞선 작별을 고한다. 그 중 몇 명은 7월 중순께 내가 운영하게 될 새로운 병동으로 가기로 내정된다. 당사자들은 그런 내막을 아직 모른다. 그때까지 나는 전 병원을 여기저기 사방팔방 불려 다니는 직책을 맡기로 했다. 문득 기시감(旣視感)이 온다. 꼭 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 같다는 착각. 어디서 여러 번 본 것 같은 2월의 희뿌연 햇살 때문이었을까.  

 


3월의 변명

 

춘삼월(春三月)에는 내 서재 밖 키다리 상수리 나무들의 거무칙칙한 등걸이며 잔가지에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높은 가지 끝까지 지하수가 스며 오르는 식물의 흡인력이 실로 대단하다. 때로 자연의 조화는 요술에 가깝다.

 

병원 의사나 간호사나 환자들도 눈에 띄게 달라 보이는 3월이다. 3월에 사람들은 사소한 일로 들뜨고 웃는다. 떨기나무는 봄바람과 관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몸을 춤추듯 흔든다. 인생으로 치면 유년기에 속하는 계절이 3월이다. 3월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유년의 환희를 부활시켜준 후 홀연히 당신과 나의 의식세계를 떠난다. 그리고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가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에서 설파했듯이 당신은 과거를 반복하지 못한다. -- "You can't repeat the past."

 

유년의 감성으로 쓴 시는 쓰라리고 아픈 거대한 정서가 없다는 이유로 소품이라는 평을 듣는다. 명시와 명곡을 숭배하는 우리는 소품이나 가벼운 노래보다 대작(大作)이나 '나는 가수다'에 나올 법한 절규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습관에 젖는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오히려 가벼운 소품에 애틋한 정이 가는 것을. 시도 노래도 올림픽 경기가 아닐진대 독자의 감탄을 간청하는 절창(絶唱)이나 목청이 터질 것 같은 가창력은 읽기에도 듣기에도 딱히 호감이 가지 않는다. 이게 내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어쨌거나 20133월 말에 내 병동은 탈고를 포기 당한 소품처럼 폐기됐다.

 

 

4월과 5월 사이

 

매해 4월에는 꿈의 분량이 많아지고 내용도 선명해진다. 누가 이토록 나긋나긋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느냐. 4월과 5월에는 시간의 흐름에 엄청난 가속도가 붙는다. 이윽고 몇 달을 애태우며 기다려 왔던 5월이 청순한 눈을 올려 뜨는 순간 당신의 심장은 예민하게 쿵쾅댄다.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동안 성급한 의사들이 여럿 병원을 떠나고 임시로 고용된 의사들이 긴 병원 복도를 어슬렁거린다. 지금 네 나이에 뭐가 아쉬워서 아직도 풀 타임으로 일을 계속하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 나는 농담 비슷하게, "배운 게 도둑질일 뿐만 아니라 천성적으로 도둑질을 좋아하는 체질이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도둑질을 하고 싶다" 라고 대답한다.

 

정신과 의사는 항상 환자의 마음을 도둑질한다. 엄청난 망상이나 공상 따위를 친절한 의사에게 빼앗긴 결과로 환자들의 마음이 텅텅 비워진다면 그들은 건강한 생각을 입수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할 능력이 생길 지도 모른다.

 

시인들도 독자의 마음을 훔칠 줄 아는 독특한 재능과 솜씨가 있는 사람들이다. 시인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하는 작업에 전념하면서 구태의연한 수법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 독자를 향하여 새롭고 신선한 어휘와 문장을 찾아낸다.

 

사랑해서 미안하다는 유행가 제목처럼 나도 한국식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 “춥고 상처받는 12월보다 싱그럽고 상냥한 5월을 더 좋아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5월은 너무 현란한 빛의 춤이므로 나는 계절의 여왕인 당신을 실눈을 뜨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미안해 하지는 말아요. 그렇게까지 눈이 부시면 아예 선글라스를 쓰고 나를 보시든지!)

 

© 서 량 2013.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