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량 487

|컬럼| 454. 바람떡

옛날에 정신치료에 심취한 적이 있다. 남들을 대할 때 손에 땀이 나서 악수하기를 꺼리는 핸섬하고 스마트한 40대 중반 독신 로버트의 형은 동네에서 소문난 ‘미친 놈’이다. 누이 셋은 왕년에 잘 나가던 시스터 보컬 그룹. 주야장천 형제자매 이야기만 하는 로버트. 로버트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필, feel’이 잡히지 않는다. 너는 어떤 사람이냐?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에 있어서 삶은 끊임없는 ‘가십, gossip’의 연속일 뿐 저 자신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로버트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주체(主體)의 부재는 한국인의 언어생활을 지배하는 주어(主語)의 부재와 비슷한 데가 있다. 자아(自我)의 부재현상. 단군의 후손들 핏속에 흐르는 피해의식, 남의 시샘과 질투의 대상이 되는 불안감 때문에 문장에 주어가..

|詩| 붉은 거북이

붉은 거북이 -- 마티스 그림 “붉은 실내, 푸른 테이블 위의 정물” 속 여자에게 (1947) 머리는 위쪽 양팔을 앞쪽으로 꽃병에 꽂힌 여린 식물 실내에 둥실 뜬 보름달 달 속 여자가 슬며시 웃는다 빨간 벽 푸른 테이블 언저리로 지직, 지지직 갈라지는 거북이 등짝 詩作 노트: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시치미를 뚝 따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해서 야수파(野獸派)라 불리는 마티스에게 거북이 한 마리를 선사한다. © 서 량 2023.11.08

|詩| 소파

소파 -- 마티스 그림 “소파 위의 젊은 여자”에게 (1944) Window 창문 없는 곳 大腦 brain 다 부질 없다 새까만 hair 번듯한 양팔 양다리 든든한 몸통 노랑 빨강 검정으로 수직 수평으로 휙휙 금이 그어지는 실내 젊은 여자 詩作 노트: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는 1941년에 받은 小腸癌 수술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cut-outs,”(색종이 오리기) 등등 작품활동을 하다가 1954년 11월 3일에 죽는다. © 서 량 2023.11.03

|詩| 시선

시선 -- 마티스 그림 “에트루리아 화분과 함께 한 실내”의 여자에게 (1940) 숲에서 산다 가을에도, 火山巖 화산암으로 만든 커다란 화분, vase 손잡이 서넛 밑으로 손바닥 여럿 테이블 위 노란색 주홍색 과일을 바라보며 숲에서 산다 여자는 詩作 노트: 실내에 항아리만한 화분이 있고 숲이 우거지다.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과일들이 맛있어 보인다. © 서 량 2023.11.01

|컬럼| 453. 아하와 어허

같은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백 번 맞는 말이다. 말을 제대로 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다. 모음(母音) 탓이라는 생각에 잠긴다. 다 ‘에미 소리’ 탓이다. “아, 그리운 고향!” 하며 탄식한다. “어, 그리운 고향!”이라 하지 않는다. 나도 너도 ‘아버지, 어머니’ 한다. ‘어버지, 아머니’ 하지 않지. ‘아’는 밝고 남성미 흐르는 적극적 어감이지만 ‘어’는 어둡고 부드럽고 여성적인 느낌을 풍긴다. ‘나’, ‘너’는 ‘아’와 ‘어’ 직전에 콧소리(鼻音) ‘니은’이 들어간 순수 우리말. 나는 당당한 주관이고 너는 약간 어두운 내 자아의 연장선상에 있다. 너는 날뛰며 나서는 나를 다스리는 고충을 감수하는 내 어머니의 직책을 맡는다. ‘aha!’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강하..

|詩| 방

방 -- 마티스 그림 “흰 드레스의 여자”에게 (1941) 하늘, 녹색 하늘빛 구름이 넘치는 방 개다리의자, 샛노란 의자가 붕 뜨는 방 땅은 싱싱한 겨자, 겨자색 흰 드레스의 10분의 1도 안되는 여자 얼굴 목부터 머리끝까지 아무것도 없다 싶지, 그치 詩作 노트: 마티스가 쓰는 노랑이 겨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니까. 부드러운 선도 그렇다. 의자가 식빵처럼 보이기도 하고. © 서량 2023.10.28

|詩| 의성어

의성어 -- 마티스 그림 “만돌린을 든 여자”에게 (1921 – 1922) 야자수 두 그루 손에 잡힌 만돌린 창문에 그림자 여자 뒷모습 재잘대는 잔파도 初聲 中聲 終聲 표주박 표음문자 쓰읍 씁 쓰읍 씁 Chick-a-boom chick-a-boom Ba-dum-bum-CHING 바덤범 칭 詩作 노트: 우리말 의성어는 ‘쿵따닥!’ 하면서 뒤가 탁, 끊기지만 영어 의성어 ‘치커붐!’은 울림이 큰 終聲이다. 재밌지? © 서 량 2023.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