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량 582

|컬럼|494. 황야의 7인

황야의 7인 --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우리가 그를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우리 자신을 위로할 수 있을까?” -- 니체의 ‘즐거운 학문’(1882)’에서. 1960년도 서부영화 ‘Magnificent Seven, (직역으로) 멋진 7인’을 인터넷에서 다시 본다. 우리말 제목은 ‘황야의 7인’. 의기투합한 7인의 총잡이가 무법자들에게 약탈당하는 멕시코의 한 마을을 구출하는 줄거리. 요즈음 내 SNS 곳곳에 올라오는 명언에 심취한다. 차제에 내가 금과옥조를 삼는 명언을 많이 남긴 7명을 선출한다. ➀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화가, 판화 제작자, 신비주의자, 낭만파 시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명언: “무절제의 길이 지혜의 궁전에 도달한다...

|컬럼| 111. 기(氣) 혹은 끼

기(氣) 혹은 끼 옥편은 기(氣)를 '기운 기'라 풀이한다. 기분(氣分)이 좋거나 나쁘다 할 때도 같은 한자가 쓰인다. 기분의 '분'은 '나눌 분'이니 싫건 좋건 다른 사람과 기를 함께 나눈다는 말. 근래에 '행복 바이러스'라는 유행어가 생긴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행복 바이러스는 감기처럼 공기로 전염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영어로 기분을 'feeling'이라 하지. 'feel'은 고대영어에서 '만지다(touch)'는 뜻이었고 그 보다 5,500년 전 경에 쓰이던 언어로 추정되는 초기인도유럽어로는 'feel'을 'pal'이라 했는데 '가볍게 때리다'는 의미였다. 사람이 서로의 감정을 파악한다는 뜻으로는 16세기 경부터 쓰이기 시작했고 1930년대 초에 남녀 간에 성적인 의도에서 서로의..

|컬럼| 110. 늑대와 곰

늑대와 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나라의 건국신화에는 동물이 잘 등장한다. 일연(1206~1289)이 세밀하게 묘사한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만 해도 그렇다. 인간 세상에 뜻을 둔 환인의 서자(庶子) 환웅이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삼천 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온다. 그런데 그가 기거하는 동굴에 며칠 후 곰과 호랑이가 찾아와 딩동! 하며 초인종을 눌렀던 것이다. 그 곰과 호랑이는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을 표명한다. 환웅은 신령한 쑥 한 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만 먹고 100일 동안 햇볕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라 한다. 곰은 환웅이 시킨 대로 인간 여자로 변하고 성급한 호랑이는 '힘들어 못해먹겠다'며 동굴을 뛰쳐나온다. 웅녀에게 눈독을 들이는 남자가 당시에 없었다. 그러나 맹렬여성..

|컬럼| 109. 요즘은 만만한 게 축구공

요즘은 만만한 게 축구공 명품(名品)을 밝히는 당신이라면 생선 중에 아마도 고등어를 제일로 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이나 중등이 아닌 고등어, 소위 ‘높을 고(高)’자가 아닌가 말이다. 높은 등급의 물고기? 아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전을 이리저리 찾아보니 고등어(高等漁)라는 한자어는 없고 청어(靑魚)과에 속한다고 나와 있어서 응, 그래? 하는 무심한 깨달음이 있었을 뿐, 어쩐지 '등 푸른 고기'라는 말이 떠오른다. 생선 등허리가 푸르면 품질이 좋다는 얘기가 된다는 말이려니. 생선이건 사람이건 명품으로 태어나야 대우를 받기 마련이다. 고등어를 영어로 'mackerel'이라 하는데 13세기부터 쓰이기 시작한 고대 불어의 'maquerel'과 어원을 같이하는 말로서 본뜻이 '뚜쟁이'라는 의..

|컬럼| 108. 확 트인 공간

확 트인 공간 며칠 전 우연히 윈스턴 처칠의 인용구를 훑어보다가 깜짝 놀라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If you are going through hell, keep going: 당신이 만약 지옥을 지나가고 있다면, 계속해서 가십시오" 라는 그의 명언 때문이었다. 이 말은 역경에 처했을 때 도망을 치거나 풀썩 주저앉는 것보다는 계속 튼실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가다 보면 역경이 끝난다는 지혜와 의지력의 중요성을 당신에게 고취시킨다. '피와 땀과 눈물로' 2차 세계대전을 극복한 영국 수상다운 발언이다. 'hell'은 고대영어와 불어에서 'underworld, 지하세계'라는 뜻이면서 '막힌 장소'라는 의미도 있었다. 14세기 후반에 역경이나 나쁜 경험이라는 뜻이 첨가됐고 'Go to hell! 지옥에 가라!..

|컬럼| 106. 스파이들은 왜 색안경을 쓰는가

스파이들은 왜 색안경을 쓰는가 계절성 정서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라는 정신과 용어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겨울은 우리 같은 누추한 갑남을녀들이 우울증을 많이 겪는 계절이다. 아예 우리의 선조로 군림하는 웅녀같이 지혜로운 곰들은 겨우 내내 쿨쿨 동면만 한다는 동물학적 기록조차 있지 않은가. 괴테는 임종 직전에 “좀 더 많은 빛을(Mehr Licht! - More light!)”이라는 최후의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빛이 과연 무엇이길래 그 시성(詩聖)은 84세의 나이에 더 많은 빛을 원했던가. ‘light’는 고대영어에서 ‘가볍다(leoht)’는 의미이면서 ‘밝다(leht)’라는 의미가 동시에 있었다. 함부로 말하자면, 가벼운 것은 밝은 것이다. 같은 맥락..

|컬럼| 105. 어려운 시절이 닥쳐 오리니

어려운 시절이 닥쳐 오리니 팔팔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한두 달 후에 1988년 10월에 개봉된 코미디 영화 'Punchline'을 당신은 기억할지 모른다. 그 영화의 여주인공인 'Sally Field'는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화려한 'standup comedienne(혼자 하는 개그우먼?)'을 꿈꾸는 여자로서 'Tom Hanks'에게 사사를 받는다. 'comedienne'은 'comedian'의 여성형. 그녀는 영화 첫 부분에서 관중 앞에서 말한다. "What does a Polish girl get that's long and hard when she gets married?" (폴란드 여자가 결혼을 했을 때 얻는 길고 딱딱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때 관중에서 누가 대뜸 답하기를 "It's a ..

|컬럼| 104. 미안, 죄송, 그리고 유감

미안, 죄송, 그리고 유감 당신은 1970년에 전 세계를 휩쓴 영화 'Love story'에 나온 유명한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사랑이란 절대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함을 뜻하지 않는다-- 그 후 엘튼 존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라는 곡이 1976년에 히트를 쳤고 그 감미로운 노래는 요즘에도 심심찮게 FM 방송에서 나온다. 1982년에 전 미국이 열광했던 'Chicago'의 'Hard to say I'm sorry'는 또 어떤가. 이렇듯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말이나 노래는 시대를 훌쩍훌쩍 초월한다. 미안하다는 것이 뭐길래 이토록 야단법석인가. 우리 또한 송대관이 에서 무드를 콱 잡..

|컬럼| 103. 달하 노피곰 도다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우리 가요 중에 가장 오래된 백제 시대의 정읍사(井邑詞) 원본을 새삼 거론하려 한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대랄 드대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대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여기에서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같이 흥을 돋구는데 쓰이는 간투사적 후렴을 제외하고 노래의 골자만 현대어로 번안하면 다음과 같은 가사가 된다. 달아 높이 좀 돋아서 멀리 좀 비치우시라/ 시장을 헤매시나요 진 데를 디딜세라/ 어느 데나 놓고 오세요/ 님이 간 데가 저물세라 이것은 행상 나간 남편이 집에 일찍 돌아오지 않아서 아내가 달에게 그의 귀갓길을..

|컬럼| 101. 실 감는 김연아

실 감는 김연아 엊그제 김연아가 밴쿠버 동계올림픽 빙판에서 뱅그르르 뛰어올라 급회전하는 장면이 아무래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은 우리 모두에게 감동의 파문을 일으켰다. 'figure'는 13세기 고대불어에서 모양(shape; form)이라는 뜻이었고 나중에 '마음 속에 그리다'라는 의미도 파생됐다. 그리고 'skate'는 고대영어로 정강이 혹은 정강이 뼈라는 뜻이었는데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소리지만 스케이팅의 시초는 4000년 전 핀란드의 남부에서 비롯됐다 하고, 그때는 동물의 뼈를 신발 밑에 부착시켜서 얼음 위를 질주했다 한다. 'form'은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말로 '폼'이라 한다. 김연아의 스케이팅은 정말 폼이 난다. 스포츠에서는 뭐니뭐니 해도 폼이 다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