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량 476

|컬럼| 4. 물고기가 상징하는 것

2003년에 출판된 댄 브라운의 소설 세계적 베스트 셀러 의 주인공은 하버드대학의 상징학(symbology) 교수다. 그는 말이나 그림이나 사물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파헤쳐 알아내는 일을 업으로 삼는 학자다. ‘symbol’의 현대적 의미는 ‘상징’이다. 그러나 문헌에 의하면 이 단어가 로마와 그리스와 불란서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1434년 경에는 ‘기독교적 믿음’이라는 뜻이었다. 당시 정통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를 이교도와 구분하기 위하여 어떤 토큰(token: 징표)을 지니고 다녔고 필요에 따라 그것을 남들에게 제시하는 풍습이 있었으며 나중에 ‘symbol’은 ‘징표’ 라는 의미로 변천했다. 고대 그리스 말로 ‘sym’은 ‘symphony’ ‘sympathy’에서처럼 ‘together’(함께)라는..

|컬럼| 3. 머리 없이 웃는 양키들

심하게 웃는다는 뜻으로 우리말에 ‘배꼽을 잡고 웃는다’는 표현이 있다. 배꼽을 잡는다는 것은 배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걱정하는 심리상태다. 우리 모두가 아늑한 모태에서 태아로 지냈던 시절에 생명의 원천이던 탯줄이 닿은 부분, 즉 배꼽이 몸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영어로는 같은 표현을 ‘laugh one's head off’라 한다. 직역을 하면 ‘머리가 떨어져 나가게 웃는다’는 뜻. 우리는 배꼽이 몸에서 일탈하는 것을 걱정하는 반면에 양키들은 (머리가 떨어져서) 머리가 없이 웃는다는 점이 좋은 대조를 이룬다. 우리 생각으로는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발상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들이 죽음을 불사하며 웃는다는 사고방식을 현명한 당신은 얼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지..

|컬럼| 2. 외부의 도움을 거부하는 남자들

영어의  ‘g’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 수상한 단어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 몇 개는 다음과 같다. 이 짧은 말들은 감탄사 혹은 간투사로 쓰이는 것이 통례이고 그 분위기에 역점을 두기 위하여 번거롭지만 문자로 표기할 때는 느낌표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Gosh! Golly! My goodness! Gad! God! My god! Oh, my god! Gee!  굳이 우리말로는, 이런! 참나! 저런! 아이고! 아이구! 어쩌나! 하나님 맙소사! 어머나! 제기랄! 등등으로 옮겨진다. ‘Gosh!’ 같은 표현은 좀 거칠게 들리면서 ‘My goodness!’ 하면 아주 여성적이고 호들갑스럽게 들린다. 이 말이 아마 우리 말의 ‘어머나!’의 뉘앙스에 가장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어쨌든 이 간투사들은 ‘Gee!’만 제외하..

|컬럼| 1. 올라타기를 좋아하는 양키들

70년도 초반만 해도 담뱃불 좀 빌립시다, 할 때 ‘Do you have a light with you?’ 했다. 그런데 80년도쯤에는 ‘You got a light on you?’ 라는 표현을 자주 들었다. 요사이는 돈 좀 있어? 할 때도 ‘Do you have some money on you?’ 한다. 일대 일로 하는 정신상담도 ‘one to one therapy’라고 했든데 요사이는 ‘one on one therapy’라 한다.  어느 사이에 영어 구어체에서 ‘with’와 ‘to’가 ‘on’으로 대치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with’나 ‘to’의 동행의식이 ‘on’의 지배의식으로 바뀐 것이다.  ‘on’ 하면 ‘There is a book on the desk’, 할 때처럼 무엇이 무엇 ‘위에’ ..

|詩| 물고기 듀엣

물고기 듀엣 거무튀튀 빨간 흰 바탕 비단잉어  찌르르 전기가 통하는 동안 첫 소절 시작 박자 흡, 들이마신 후 척척 진행하는 재즈式 不協和音 물결에 휩쓸리는 바이올린 高音 조곤조곤 입질하네 못 참겠어 내 우울한 잉어꼬리 作動方式 사방팔방 무릎이 꺾이는 동안 거무튀튀 빨간 흰 바탕 비단잉어 詩作 노트:이 詩는 2007년 여름 ‘물고기 합창단’이라는 제목으로 썼다가, 다시 2021년 여름 수정했다가, 2025년 1월에 다시 썼다. 제목을 바꿨다. ⓒ 서 량 2025.01.25

2025.01.26

|컬럼| 26. 불경스러운 말들

'F--k you!'는 미국에 사는 우리들이 심심치 않게 듣는 영어다. 이 표현이 험악한 욕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20년경, 일차세계대전이 끝난 즈음이었다. 'F--k me!'는 'x해 줘!' 하는 매우 저속한 말로서 대개는 여자가 남자에게 한다. 이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발언을 ‘Rated R’ 영화에서 깜짝 놀라며 들은 적이 몇 번 있다. 한마디로 양키들의 의사표시는  대담하다.  'F--k you!'가 남녀를 불문하고 친한 사이에 부드러운 억양으로 쓰일 때는 ‘말도 안 돼는 소리 집어 쳐!’라는 뜻이 된다. 쌍소리에 과민한 당신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앞뒤의 문맥을 연구해 볼만한 화법이다. 'motherf--ker'는 우리나라의 육이오 사변이 발발한 1950년도에 미국에서 흑인들이 유행시..

|컬럼| 484. 도망자

1960년대 중반경 미국과 한국을 휩쓸었던 미드 를 기억하는가.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채 제라드 경위에게 쫓겨 다니면서 자신의 무죄를 밝히기 위하여 ‘외팔잡이 사내’를 잡을 때까지 미 전역을 방황하던 소아과의사 리처드 킴블의 어두운 얼굴을. ‘도망자’는 도망할 逃, 망할 亡, 놈 者, 나쁜 뜻이다. 어릴 적에 한자어 ‘亡’자를 무서워한 적이 있다. 사실은 지금도 좀 그렇다. 니은자에 뚜껑을 위태롭게 얹어놓은 것 같기도, 상투가 달린 디귿자처럼 보이는 망할 亡.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과 행동이 정상을 벗어난 치매 상태를 뜻하는 망령(妄靈). 기억력이 완전 망가진 망각(忘却), 사방팔방 검푸른 파도만 출렁이는 망망대해(茫茫大海). 망중한(忙中閑). 정치적 이유로 본국을 떠나는 망명(亡命). ‘망’이..

|컬럼| 483. 감각 프로토콜

오감(五感)을 생각한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태아의 발달과정을 살펴본다. 임신 2개월에 눈의 망막이 생기며 3개월에 내이(內耳)가 자리를 잡고 혀에 맛봉오리가 솟아나는 태아. 당신과 나는 4개월의 태아였을 때 엄마 자궁 속에서 빛에 반응을 보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손가락을 빨기도 했다. 6개월때쯤 엄마 목소리와 다른 소리를 인지하고 7개월에 단맛 쓴맛을 분별했고 8개월에는 소리의 강약과 고저와 엄마 냄새 또한 알아냈던 것이다. 초등학교 자연 교과서. 태아 발달과정의 흑백 그림을 상기한다. 왕방울처럼 커다란 눈에 등이 휘어진 생선 같은 생명체가 벌써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알고 무언가를 피부로 느끼다니.  태아의 입과 혀는 말을 하는 대신에 자기 손가락을 빨고있다. 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