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06. 스파이들은 왜 색안경을 쓰는가

서 량 2010. 5. 11. 00:35

계절성 정서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라는 정신과 용어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겨울은 우리 같은 누추한 갑남을녀들이 우울증을 많이 겪는 계절이다. 아예 우리의 선조로 군림하는 웅녀같이 지혜로운 곰들은 겨우 내내 쿨쿨 동면만 한다는 동물학적 기록조차 있지 않은가.

 

괴테는 임종 직전에 좀 더 많은 빛을(Mehr Licht!: More light!)”이라는 최후의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빛이 과연 무엇이길래 그 시성(詩聖)84세의 나이에 더 많은 빛을 원했던가.

 

‘light’는 고대영어에서 가볍다(leoht)’는 의미이면서 밝다(leht)’라는 의미가 동시에 있었다. 함부로 말하자면, 가벼운 것은 밝은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14세기경에 ‘light-hearted’는 가벼운 마음, 즐거운 마음이라는 뜻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것이 무엇이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무도, 심지어는 신() 자신도 빛의 속도에 스피딩 티켓을 발부할 수 없다. 가장 가벼운 것이 가장 빠른 것이다.

 

그러나 무슨 영문에서인지 16세기에 들어서서 ‘light-headed’는 어지럽다는 뜻이 됐고 ‘light-fingered’는 남의 물건을 훔치기 잘한다는 의미로 변한 것이다. 직역하자면 손이 가볍다는 것은 소위 우리말로 손 버릇이 나쁘다는 말이다.   

 

겨울에 마음이 저조해 지는 것은 햇볕이 부족한 데서 온다는 학설이 있다. 꽃 피고 새 우는 춘 삼월에 만물이 소생하는 이치도 봄철에 햇살이 증가하는 현상에서 기인된다는 상식적이 이론이 단연 유력하다. 그래서 햇살이 부풀어오르는 봄철에는 처녀들의 가슴이 설레는 법이려니.

 

겨울철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2,500 내지 10,000 룩스(lux)에 해당되는 발광원(發光原) 앞에 앉아서 일정 시간 책을 읽거나 하면 좋은 효과가 있다 한다. 햇볕이 쨍쨍한 날이 3 2천 내지 13만 룩스에 해당된다. 그런 날 밖에 나가 보라.

 

카뮈(Albert Camus: 1913-1960) 1942년에 세상을 경악시킨 『이방인』의 시작 부분에서 주인공 뮈르소가 태양이 작열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해변에서 한 아랍인을 사살하는 장면은 또 어떤가. 그건 마치도 햇살이 우리의 망막에 가장 극심한 빛을 쏘였을 때 우리들 중에 예민하고 사람이 가장 불안정한 상황이 빚어내는 광기의 극치라 해석해도 무방하다.  

 

1937년에 자외선과 적외선을 차단하는 색안경을 만들어 내서 인류의 역사에 처음으로 굵은 횡선을 그어놓은 레이-(Ray-Ban)이라는 상표를 기억할 것이다. 문자 그대로 빛살(ray)을 금지(ban)한다는 의미였다. 육이오 직후에 경부선 열차에서 번득이는 갈고리가 달린 팔뚝으로 싸구려 연필을 사 달라고 강짜를 부리던 우리의 쓰라린 육이오 직후, 상이군인들이 스스로의 눈을 가리려고 쓰던 그 무서운 일본식 발음,‘라이방이 당신은 생각날 것이다. 그 즈음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맥아더 장군이 썼던 해골의 눈처럼 음침한 검정색 라이방이 떠오를 것이다.

 

, 이제는 당신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며 물어 보고 싶다. 당신은 여름의 무자비한 정열과 광기를 원할 것인가. 아니면 겨울의 차가움을 선택할 것인가. 당신의 망막에 스며드는 저 뜨거운 태양의 무자비한 열정에 몸을 맡길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우울한 지성이 부여하는 차분한 판단의 귀추에 고개를 숙일 것인가. 절대로 흥분하지 않는 선글라스를 쓴 스파이처럼. 색안경을 쓰고 무대에 서서 차갑게 그러나 절묘한 감성을 호소하는 색소폰 연주자처럼.

 

서 량 2010.05.10

-- 뉴욕중앙일보 2010년 5월 12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