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김연아가 밴쿠버 동계올림픽 빙판에서 뱅그르르 뛰어올라 급회전하는 장면이 아무래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은 우리 모두에게 감동의 파문을 일으켰다.
'figure'는 13세기 고대불어에서 모양(shape; form)이라는 뜻이었고 나중에 '마음 속에 그리다'라는 의미도 파생됐다. 그리고 'skate'는 고대영어로 정강이 혹은 정강이 뼈라는 뜻이었는데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소리지만 스케이팅의 시초는 4000년 전 핀란드의 남부에서 비롯됐다 하고, 그때는 동물의 뼈를 신발 밑에 부착시켜서 얼음 위를 질주했단다.
'form'은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말로 '폼'이라 한다. 김연아의 스케이팅은 정말 폼이 난다. 스포츠에서는 뭐니뭐니해도 폼이 다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김연아의 몸놀림에는 일본 선수 아사다 마오에 비하여 어딘지 모르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을 준다. 아니다. 사람의 동작은 내용과 형식이 일치해야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김연아 때문에 인터넷을 찾아보고 피겨 스테이팅에서는 spin(급회전)과 jump(뛰어오르기)와 footwork(발놀림)의 세 가지 요소를 중시한다는 것을 배웠다.
'spin'은 고대 영어에서 실을 감는다는 뜻이었다. 스파이더맨의 'spider'도 거미가 거미줄을 짜는 의미에서 'spin'에서 유래한 단어다. 'spin'을 우리말로 '물레 잣는다'라 하고 명사로는 '물레질'이라 한다. 물레방아처럼 천천히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그린 순수한 우리말이다. 속담에 '밤새도록 물레질만 하겠다'는 한 여자가 애인을 기다리며 물레질만 하다가 공연히 밤을 새우는 상황으로, 할 일을 하지 않고 딴 짓만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뜻.
'spinster'는 14세기 중엽에 생겨난 단어로서 '물레 잣는 여자'라는 뜻이었는데 18세기 초에 '노처녀'라는 의미가 됐다. 노처녀는 남자를 사랑하고 싶은 심정을 벼를 짜는 행동으로 해소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 나오는 <물레 잣는 그레첸>도 독일어로 'Gretchen am Spinnrade'라 한다. 옛날 중학교 음악교과서에 <실 감는 그레첸>으로 나왔던 기억이 당신은 혹시 나는지.
'jump'에는 공격적인 뜻이 내포돼 있다. 그래서 'He jumped me'라 하면 '그 놈이 내게 와락 덤벼들었다'는 슬랭이다. 김연아는 그렇게 공격성과 유연함을 잘 버무리 하는 재능을 만천하에 보여줬다.
피겨 스케이터는 발놀림이 부산스럽다.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얼음 위를 뛰어다닌다. '놀림'은 '놀다'의 명사형. 발이 자유자재로 놀아야 우리는 기쁜 법. 스포츠도 직장 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 고되지 않고 쾌적한 놀이가 된다. 고스톱 같은 노름도 '놀다'의 또 다른 명사다.
인생을 고진감래(苦盡甘來)에 비유해서 고생을 하며 살라고 배웠지만 당신은 그렇게 맨날 인상을 빡빡 쓰면서 살아야만 하겠는가. 아사다 마오의 돌같이 굳은 표정에 비하여 김연아의 저 유연한 웃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오래 전 우리 유행가 <노랫가락 차차차> 가사가 떠오른다. 젊어서 백수건달로 지내라는 충고라는 곡해 때문에 한때 금지곡이었던 이 노래는 인생의 고락을 마음 푹 놓고 여유 있게 놀듯이 대하라는 제언이 바닥에 깔려있다. 역시 인생의 금메달은 삶을 즐기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 늙어지면 못 노나니 / 화무는 삼일홍이요 /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 화란춘성 만화방창 /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 서 량 2010.02.28
-- 뉴욕중앙일보 2010년 3월 3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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