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량 586

|컬럼| 81. 자살의 의미

자살을 영어로 'suicide'라 한다. 'sui'는 라틴어의 'self(자기)'라는 뜻이고 'cide'는 '자르다(cut)'라는 의미니까 'suicide'는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는 말. 한자로는 '자살'이라고 하는데, 우리 고유의 말에는 이 단어에 해당하는 명사가 없다. 우리에게 자살이라는 개념은 혹시 중국에서 빌려온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cide'가 목숨을 끊거나 자른다는 의미로는 'suicide' 외에도 'homicide(타살); genocide(인종학살); patricide(살부); infanticide(영아학살)' 같은 어휘들이 즐비하다. 'decide'는 결정한다는 말이다. 한 양키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양쪽을 잘 분석해서 한쪽을 과감하게 짤라 내야 결론이 나오지 않겠는가...

|컬럼| 80. 디오게네스(Diogenes)의 비애

디오게네스(Diogenes)의 비애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이 그리스 거리에 누워 뒹구는 디오게네스(기원전 412-323)에게 호의를 베풀고자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자기가 즐기고 있는 햇볕을 가리지 말고 저리 비켜달라 했다는 일화를 당신은 기억하는가. 그 안하무인의 희랍철학자는 견유학파(犬儒學派: the cynics)의 대가다. 'cynic'은 희랍어의 'kynikos'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개 같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한자로 번역된 '견유학파'에도 '개 견'자가 들어간다. 냉소적으로 남의 결점을 지적하는 일을 낙으로 삼는 디오게네스는 당시 희랍철학자들에게 '개 같은' 취급을 당했다. 동시대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거대한 그림자에 시커멓게 가려져서 독설과 시..

|컬럼| 22. 까만 안경

까만 안경 까마득한 옛날에 원시인들은 동굴에서 살면서 밤을 무서워했다. 깜깜한 밤이면 육식동물들이 굴에 들어와 그들을 물어뜯거나 잡아먹기도 했으리라. 눈부신 한낮에 푸른 들판을 뛰어다니던 원시인들은 어둠이 마냥 싫었다. 그래서 그들은 검정색을 꺼려했다. ‘black’은 나쁜 뜻 투성이다. black sheep (말썽꾸러기), blackout (필름이 끊긴 상태), blackmail (협박), black market (암시장), black eye (맞아서 꺼먼 눈 자위) 따위가 좋은 예다. 14세기 중반에 유럽을 휩쓴 흑사병(黑死病)도 ‘Black Death’라 했다. ‘black widow (검정 과부?)’는 암거미가 성교가 한 후 수거미를 잡아 먹은 후 즉석에서 ‘과부’가 되는 무시무시한 흑거미의 자태..

[뉴욕 25시] 두 black widow가 말해 주는 것 - 김현일 중앙일보 주간

https://www.koreadaily.com/article/453371 독자들의 선호하는 본지 칼럼 중의 하나가 '잠망경'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시인인 서량 박사가 '잠망경'의 고정 필자임을 모르는 뉴요커는..." data-og-host="www.koreadaily.com" data-og-source-url="https://www.koreadaily.com/article/453371" data-og-url="https://www.koreadaily.com/article/453371" data-og-image="https://scrap.kakaocdn.net/dn/eFzOI/hyYTgCZNHW/xOi6dEOoVrOp8cL92Va8tk/img.png?width=200&height=200&face=0_0_..

|컬럼| 79. 잃어버린 마음과 빼앗긴 마음

잃어버린 마음과 빼앗긴 마음 'lose heart'는 낙심(落心)한다는 말이다. 마음을 분실 당했다는 의미다. 마음 주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마음을 되찾아야 하는데 그 행동을 'take heart' 즉 '용기를 낸다' 한다. 두 관용어가 다 'my' 또는 'your' 같은 소유격이 들어가지 않는 점에 당신은 유의하기 바란다. 즉, 'Don't lose your heart' 또는 'Take your heart' 하면 도무지 뜻이 안 통하는 반면 'Don't lose heart. (낙심하지마)' 하거나 'Take heart and try again. (용기를 내서 다시 해 봐)' 하면 아주 세련된 영어다. 고대 라틴어로는 'heart'를 'cor'라 했다. 결혼식 초대장에 으레 찍히는 말로 'Y..

|컬럼| 492. 환경 변화

환경 변화 당신과 나는 환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생물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던 옛날, 판자대기처럼 펀펀한 세상 끝을 벗어나는 순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죽는다고 믿었던 선조를 둔, 그야말로 육지에 서식하는 뭍살이동물이다. 시대적 배경 또한 우리가 처한 환경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 법. 생각해 보라. 중세기를 살던 사람들과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이 완전 딴판이라는 점에 대하여. 중세기인들은 종교적 사고방식에 매달리는 경건한 삶을 살았고, 지금 지구촌 누리꾼들은 의식이 깨어 있는 동안 셀폰을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다는 시대적 배경의 차이점에 대하여. 환자와 대화를 나눈다. - “정신과 약이 내 영혼에 해롭다고 신이 알려줬기 때문에 약 먹기를 거부한다.” - “신이 내게는 정신과 약이..

|컬럼| 491. Goodbye 명사, Hello 동사!

Goodbye 명사, Hello 동사! 오래전 미정신과협회 간행,『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제4판(DSM-4)에 ‘Wha-byung’이라는 진단명이 출현했다. 우리말 ‘화병(火病)’을 소리 그대로 옮긴 말. 한국문화권에서 발생한다는 주석이 붙는다. 그리고 2013년 ‘DSM-5’에서 화병은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된다. 화병은 정신적 고통(distress)과 육체적 증세가 공존하는 증후군. 가슴이 답답하고, 두통, 소화불량, 불안, 우울 같은 증상이 정신질환을 방불케 하지만 정신병명이 아니라는 소견이다. 원인으로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위계질서를 손꼽는다. 대가족 제도에서 일어나는 고부간의 마찰도 빼놓을 수 없을 뿐더러 유교적 형식주의에 얽매이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서 온다는 의견도 분분하다. ..

|컬럼| 490. 도깨비나라

도깨비 나라 버지니아주 소도시 ‘Falls Church’ 가는 길에 폭우가 왕창 쏟아진다. 차들이 꽉 막히고 윈드쉴드 와이퍼가 끽끽 요동치고 짙은 안개가 장대비에 합세한다. 날씨가 도깨비 같다. 2025년 재미 서울의대 컨벤션 길. 내가 맡은 강의에 ‘귀신(鬼神)’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귀신 鬼는 그렇다 치더라도, ‘귀신 神’은 좀 난처하다. ‘하느님’을 귀신이라 부르는 것은 불경스럽다. 신을 도깨비라 할 수도 없는 노릇. 민속설화에 「혹부리영감」, 「도깨비방망이」가 있지. 전자는 ‘혹 떼려 갔다가 혹 붙이고 왔다’는 관용어가 나올 지경으로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진 스토리. 도깨비들이 사는 집에 무단 투숙한 혹부리영감은 자기의 구성진 노래가 목에 달린 혹에서 나온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