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479

|컬럼| 421. 이상한 사람들

저스틴은 가끔 병동 화장실에 수건이나 다른 물건을 넣어 변기를 막히게 해서 아래층 모든 병동 화장실의 변기 물 또한 불통하게 만든다. 남이 안보는 사이에 문 손잡이를 정성껏 핥기도 하고 다른 이상한 짓도 곧잘 한다. 그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차림새가 깔끔한 40대 백인. 저 자신은 유머 감각이 전혀 없지만 남이 우스개 말을 하면 어설프게 웃는다. 늘 고개를 푹 숙인 자세. 내가 말을 걸면 짤막하게 대답한다. 저스틴은 남들을 상대하기가 불안하고 불편하다. 70대 홀어머니가 병동으로 전화를 해도 되도록 통화를 피하다가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말 몇 마디 후에 전화를 끊는다. 자폐 스펙트럼 중에서 정도가 심한 영역에 속하지만 얼굴이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저스틴과 운 좋게 긴 대화를 나눴다. 병동 변기가 막..

|컬럼| 416. 낯선 사람에게 말하기

커다란 양초들이 즐비하게 진열된 어느 백화점 향초 섹션을 머뭇거린다. “초콜릿보다 바닐라 냄새가 더 좋아요,” 하며 한 백인 중년 부인이 등뒤로 바쁘게 말하면서 지나간다. 나는 두 향초를 킁킁대며 검토한다. 초콜릿 냄새는 공허감을 자극하는 반면에 바닐라 향기는 왠지 마음을 가라앉히는 느낌이다. 그 여자는 왜 내게 그런 말을 했을까. 초콜릿향과 바닐라향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를 도와주려는 의향이었나. 그녀가 낯선 사람에게 훌쩍 말을 던지고 지나간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 1963~)의 2019년 저서 를 읽었다. 이듬해 한국에서 번역판이 나왔는데 제목을 이라 해 놓았다는 것을 검색해서 알았다. 저자는 2015년 7월,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일어난 30세의 히스패닉계 경찰과 28살..

|컬럼| 420. 3등분 마음

Strong minds discuss ideas, average minds discuss events, weak minds discuss people. – Socrates (강한 마음은 아이디어를 말한다. 보통 마음은 일을 말한다. 약한 마음은 사람을 말한다. – 소크라테스) 선과 악, 천국과 지옥 같은 이분법을 벗어나서 사람들을 3등분하는 사고방식이다. 3차원은 공간을 창출한다. 3차원은 2차원보다 월등하다. 성부, 성자, 성령이 이루는 3위일체 카톨릭 사상. 본능, 자아, 초자아가 사람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정신분석의 기본. 입법, 사법, 행정으로 나뉘는 3권분립의 정부체제. 우리의 사고방식에는 이렇게 셋이라는 숫자가 자주 들어간다. 넷, 다섯, 여섯 하다 보면 갈래가 많아져서 어려워지는 것인지. 대개..

|컬럼| 419. 아인슈타인을 공부하는 라일리

“Weak people revenge. Strong people forgive. Intellectual people ignore: 약자(弱者)는 복수한다. 강자(强者)는 용서한다. 지자(知者)는 간과한다.” – 아인슈타인 라일리는 걸핏하면 다른 환자와 싸우고 기물 파손을 일삼는 극심한 성격장애 때문에 내 병동에 오래 머문다. 불철주야로 병동 직원들을 괴롭히는 데 이골이 난 30대 백인 청년. 주름진 아인슈타인 얼굴이 들어간 배경에 이 짧은 세 개의 문장이 돋보이는 인터넷 파일을 프린트해서 그에게 주며 벽에 붙여 놓고 뜻을 되새기라고 타이른다. 그는 네, 그러겠습니다, 하고 기꺼이 대답한다. 걱정이나 짜증거리가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비를 걸고 주먹다짐을 하는 둥, 꼭 남을 기분 나쁘게 해야 직성이 ..

|컬럼| 186. 방뇨자(放尿者)

기원전 5, 6백 년 전쯤 중국의 공자(B.C. 551~479)보다 19 살 어리게 태어난 그리스의 피타고라스(B.C. 570~495)는 생도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한편 인간의 도덕성을 강조하고 훈시하기로 이골이 났던 위인이었다. 피타고라스는 태양을 향해서 방뇨하지 말라고 강조했고 금(金)으로 만든 보석을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문하생들에게 언성을 높였다. 직각 삼각형의 빗변의 길이에 대한 법칙을 밝혀낸 그는 수학보다 행동심리학에 더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징기스칸(A.D. 1162~1227)을 기억할지어다. 공자나 피타고라스 시대보다 1600년 정도 세월이 흐른 후 아세아는 물론이며 유럽에까지 막강한 위세를 떨치던 동양의 영웅, 징기스칸! 그는 14개의 금칙을 선포하고 그 법을 어기..

|컬럼| 418.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지 2년 반에 접어든 2022년 6월 끝자락. 아직 외식을 하기가 좀 불안한 세상이다. 군대 시절. 장교와 사병이 식사를 같이 하지 않아야 해서 위생병들과 한 자리에서 밥을 안 먹던 기억이 난다. 남녀가 가까워지려고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풍습과 정 반대 경우. 장교와 사병이 친근해지면 위계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의사는 자기 가족을 다른 동료의사에게 일임한다. 아들환자가 아버지의사 말을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아버지의사는 자칫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이유에서다. ‘Familiarity breeds contempt’. ‘친숙은 경멸의 근본’. ‘가까워지면 무례해 진다’는 격언. 우리 속담의 ‘오냐오냐 했더니 할애비 상투를 틀어잡는다’와 같은 ..

|컬럼| 417. 시샘, 우리들의 어두운 본성

-- 도공은 도공과 원한을 맺고, 공예사는 공예사를, 거지는 거지를, 시인은 시인을 시샘한다. - 헤시오도스 (Hesiod: 기원전 8세기) 맞는 말이다. 내가 빌 게이츠를 시샘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정신과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경쟁의식을 느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조지가 뗑깡을 부린다. 전날 롤랜드가 극심한 난동을 피웠던 일이 부러웠다고 말한다. 여럿이 뛰어와서 떠들어대고 주사를 놓는 병동 직원들의 관심을 저도 받고 싶다는 것. 조지와 롤랜드는 썩 좋은 사이가 아니다. 간간 서로 트집을 잡고 주먹다짐도 한다. 그들의 불행은 시기와 질투에서 출발한다. 신데렐라의 계모와 의붓자매는 차갑고 모질고 악질적이다. 콩쥐팥쥐의 팥쥐도 저질의 극이다. 유교의 칠거지악(七去之惡), 카톨릭의 ‘7개 대죄, ..

|컬럼| 18. 주인과 손님

호텔(hotel), 병원(hospital), 주인(host), 적개심(hostility), 또는 볼모(인질: hostage)의 말 뿌리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hospital'에서 파생된 'hospitality'는 '융숭한 대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경건한 말 속에 '적개심'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는 말인가. 고대 라틴어 'host'는 '다수'와 '적'이라는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소수에게 다수는 항상 적이었다. 'host'는 낯선 사람 외국인을 뜻하는 'hostis'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저절로 짧아진 단어이다. 그러니까 다수뿐만 아니라 타인이나 외국인도 적으로 취급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어른들의 잠재의식을 대변하는 어린애들 말에도 내편은 '우리 나라..

|컬럼| 415. 아리스토텔레스와 투란도트

대학시절 한 여대생과 사랑에 빠졌었다. 어느 날 그녀가 “우리 이젠 그냥 친구로 지내요,” 한다. ‘플라토닉 러브’ 관계 비슷하게 지내고 싶다는 것. 양파에 식초를 뿌려가며 자장면을 먹으면서 마주 앉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호되게 설레이던 나에게 플라토닉 러브는 아주 이상한 외래어였다. 문학청년 티를 내며 시(詩)에 대하여 호들갑을 떨지 말았을 걸 그랬지. 플라톤의 저서 (BC 380)에 나오는 ‘시인(詩人) 추방론’을 읽었다. 그는 진리의 원형질, ‘이데아’와 그것을 모방하는 현상계와 현상계를 재차 모방하는 예술가들, 특히 시인들이 공화국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했다. 족쇄를 찬 노예들이 관람하는 동굴벽 그림자 놀이의 프로듀서들이 예술가라는 사연이다. 동굴 밖에 건재하는 ‘이데아, Idea, 이념(理念)’..

|컬럼| 414. 너는 중요해

어릴 적에 영어를 배울 때 헬로, 오케이 수준을 넘어서 원어민 발음을 처음 흉내 냈던 말이 ‘워츠 매리 유’ 였다. ‘What’s the matter with you?’를 빨리 발음하는 소리가 내 귀에 그렇게 들렸다. 우리말로 ‘뭐가 문제야?, 무슨 일 있어?’라는 뜻. ‘What’s the problem?’과 거의 같은 의미. 이민진(Min Jin Lee, 1968~ )은 7살 때 부모와 함께 이민 온후 예일대 역사학과와 조지타운 법대를 졸업하고 잠시 변호사로 일했다. 그녀가 20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쓴 소설 ‘Pachinko, 파친코’를 애플 TV가 제작해서 2022년 3월 25일에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8부작을 몰아쳐 보았다. 그녀는 예일 대학 2학년때 일본을 다녀온 선교사가 학교 교회에서 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