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k people revenge. Strong people forgive. Intellectual people ignore: 약자(弱者)는 복수한다. 강자(强者)는 용서한다. 지자(知者)는 간과한다.” – 아인슈타인
라일리는 걸핏하면 다른 환자와 싸우고 기물 파손을 일삼는 극심한 성격장애 때문에 내 병동에 오래 머문다. 불철주야로 병동 직원들을 괴롭히는 데 이골이 난 30대 백인 청년. 주름진 아인슈타인 얼굴이 들어간 배경에 이 짧은 세 개의 문장이 돋보이는 인터넷 파일을 프린트해서 그에게 주며 벽에 붙여 놓고 뜻을 되새기라고 타이른다. 그는 네, 그러겠습니다, 하고 기꺼이 대답한다.
걱정이나 짜증거리가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비를 걸고 주먹다짐을 하는 둥, 꼭 남을 기분 나쁘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라일리. 자기의 불쾌한 정신상태가 늘 남이 저지른 만행의 결과라는 믿음과 함께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남을 처벌하고 복수하는 스릴 만점의 삶을 산다. 남들의 악행을 척결하기 위하여 스스로 악행을 저지른다. 사태의 자초지종에 대하여 새빨간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는 라일리.
아인슈타인이 사람을 양분하지 않고 셋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이 재미있다. 자칫, 정신적 계급제도를 주창하는 착각이 들까 염려스럽지.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사람 마음이 요지부동의 구조물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변형, 변질되는 덧없는 유기체, 생물현상이라는 사실을. 물론 아인슈타인은 지적인 사람을 선호한다. 어찌 다른 방안이 있을 수 있나.
마음의 상처라는 항목보다 더 값지고 중요한 일거리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라일리는 말한다. 복수, 앙갚음 하는 짓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고. 나는 그의 말을 들은 척 만 척하기로 작심한다. 내가 그보다 더 지적인 사람이라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동사 ‘ignore, 무시하다’는 형용사 ‘ignorant, 무지하다’와 말뿌리가 같으면서 14세기 불어와 라틴어에서 ‘unaware, 알지 못한다, 모른다’는 뜻이었는데 나중에 일부러 ‘모르는 척하다’는 의도적인 요소가 깃들어진 단어가 됐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보고도 못 본 척!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은 크고 작은 불화의 씨가 되지만 타인의 의도를 짐짓 모르는 척하는 것은 일종의 예의 또는 배려일 수도 있고 저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책이기도 하다. 길거리 깡패들을 꼬나보았다가, “왜 째려?” 하는 시비가 붙는 일이 비일비재한 인간의 본성을 유념하거라, 라일리야. 제발 못 본 척해라!
그에게 대충 이렇게 말한다. “너는 아무리 아인슈타인의 명언을 이해한다고 떠들어대지만 남들을 종일토록 살금살금 쫓아 다니며 시비를 걸고 말썽을 일으키지 않느냐 말이다. 직원이건 다른 환자이건 상관없이. 네가 남들을 간과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 직원들에게 너를 향하여 무반응을 보이라는 지시를 내리겠다.”
한 두 시간쯤 후에 라일리가 한 직원에게 또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건다. 직원이 라일리 면전에 대고 “I am ignoring you as the doctor asked me to! - 나는 의사가 시킨 대로 너를 무시한다!”라고 소리쳐 말한다.
그 결과로 라일리는 욕설을 퍼부으며 난동, 난리블루스를 친다. 직원이 그를 무시하는 데 완전 실패한 채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인 결과다. 그는 지 비위에 거슬리는 말을 한 사람에게 앙갚음을 하는 즐거움을 한 번 더 톡톡히 누린 셈이고.
© 서 량 2022.07.10
- 뉴욕 중앙일보 2022년 7월 13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2/07/12/society/opinion/202207121711102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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