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1막과 2막 사이 초등학교 시절, 버려진 강변 기차 다리 가까이 두터운 천막 아래에서 본 서커스 생각이 나요 공중에서 흔들흔들 그네에 거꾸로 매달린 남자 팔목을 여자가 덥석 잡는 것, 분필가루 방귀를 펑펑 뀌던 피에로의 몸짓 같은 것, 다 별로였어요 그러나 끝 부분에 하는 연극으로 손에 땀을 쥐었.. 詩 2009.10.01
|詩| 어떤 조명 잎새 붉어질 때쯤 흩어진 솜구름 윤곽이 더 뚜렷해질 때쯤 채광 좋은 당신의 내실에서 반나절 정도만 지냈으면 합니다 말을 천천히 하고 숨도 천천히 쉬면서 거창한 삶의 의미나 지난 날의 신통찮은 후회 따위는 전혀 입에 담지 않으면서 일렁이는 잎새를 스치는 바람을 건성으로 바라봤으면 합니다 .. 詩 2009.09.30
|詩| 송이버섯 살펴보기 이건 지상의 액운을 막아주는 거대한 우산인지도 먼 원자탄이 천천히 일으키는 인류의 반란일 수도 몰지각한 남근이 천상을 기리는 묵묵한 예식일지도 몰라 당신 머리를 감싸주던 사랑의 손길은 어김 없는 파괴력이다. 시간의 행진 또한 만개한 꽃잎을 좀먹는 윤락행위에 부단히 동조한.. 詩 2009.09.22
|詩| 검정색 노래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아주 높은 음역에서 뛰노는 샛노란 어린이 합창 소리 들린다 변성기 이전 그 쟁그라운 목소리 빨간 꽃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나직하게 검정색 꽃 그림자만 달빛에 흔들리네 거짓말이 아니야 눈을 반만 뜨고 봐봐 당신 입술 연지처럼 부풀어오른 살짝 붉은 색이 감도는 검.. 詩 2009.09.21
|詩| 애니멀 카니발 사소한 눈짓 하나로 비둘기며 돌부처가 탄생합니다 자궁 같은 곳에서 수 개월간 뜸을 들였다는 말일랑 전혀 못하지요 빛 다발 한 묶음이 실시간으로 솟아나는 현장입니다 뱃살이 비단결 같은 산개구리들의 합창소리랑 우왕좌왕하는 단체행동을 보세요 팔 둘, 다리 둘, 눈 둘, 광대뼈도 .. 詩 2009.09.17
|詩| 복식호흡 언덕에 허리를 축 늘어뜨려 몸을 뒤척이며 뒹굴뒹굴 쉬고 싶었다. 천천히 숨을 몰아 쉬며 어깨뼈 관절도 꺾었다 폈다 가벼운 운동을 한 다음 이름 모를 잎새 커다란 나무 밑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짐짓 명상에 잠기는 포즈를 취하면서 속으로는 어둡고 안타까운 과거를 되씹고 싶었다. 횡격막이 무.. 詩 2009.09.04
|詩| 3년 동안의 진실 3년을 눈빛이 변하지 않는 호랑이를 본 적이 없다는 말이지 양쪽 뺨에 전쟁터 아메리칸 인디언들처럼 굵은 줄무늬가 죽죽 박힌 찌푸린 얼굴일랑 간간 드문드문 보는 둥 마는 둥 해야 사랑도 새롭다는데야 당신이 펄펄 뛰며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이지 나 오늘 3년 동안을 빛이 조.. 詩 2009.08.26
|詩| 마음 아픈 산 알고 봤더니 산은 하늘이 두 조각이 나더라도 대중탕 욕탕 물처럼 출렁이지 않는다 하던데 그거 참, 산을 위선자라고 놀려 줄까나 산을 고집쟁이라고 욕이라도 해줄까 저 산 속에 울긋불긋한 벌레들이 꼼지락거리고 있다고? 잠시 눈길을 딴 데로 옮겼다가 잡았다! 하려고 고개를 확 돌렸.. 詩 2009.08.12
|詩| 불법체류 불법체류자를 함부로 다루지 못한다 이 좁디 좁은 우주 공간을 누가 클레임 할 것인가 크게 우습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양팔을 하늘 높이 뻗치며 시공을 클레임 하는 당신이여 이 협소한 스페이스를 삼국지의 조조처럼 순 지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상상에 사로잡힌 내 가여운 영웅이여,.. 詩 2009.08.01
|詩| 여름을 위한 동물왕국 내성적인 나뭇잎들이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흔들리더니 잠시 후 본래 타고난 근성을 내보이며 체면이고 뭐고 없이 마구, 마구 진저리를 치는구나 살아있는 것들은 급속도로 해체된다 들끓는 돌풍 속에서 알뜰한 사랑을 포기한 우리들도 이맘때쯤 해서 당신이 등장한다 공포영화에 배불.. 詩 2009.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