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어떤 조명

서 량 2009. 9. 30. 20:13

 

 

잎새 붉어질 때쯤 흩어진 솜구름 윤곽이 더 뚜렷해질 때쯤

채광 좋은 당신의 내실에서 반나절 정도만 지냈으면 합니다

 

말을 천천히 하고 숨도 천천히 쉬면서 거창한 삶의 의미나

지난 날의 신통찮은 후회 따위는 전혀 입에 담지 않으면서

일렁이는 잎새를 스치는 바람을 건성으로 바라봤으면 합니다

 

창 밖 키 큰 나무는 아직 풍성한 여름 옷을 걸치고 있답니다

 

오래 전 폭우에 뎅겅 부러진 미디엄 사이즈 나뭇가지 하나가

당신이 수치스러울 때 겉으로나마 내보이는 주홍빛 기색으로

반짝이는 잎새들의 운명을 묵묵히 빈둥빈둥 헤집고 있습니다

잎새 전체가 확연히 빨개지고 나무 언저리가 더 흐릿할 때쯤

조명이 어두워지는 당신의 내실에 한동안 머물렀으면 합니다

          

© 서 량 200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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