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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도시 / 김정기

가을도시 김정기 새는 몸을 허물어 도시를 덮었다. 열린 창문마다 햇살을 불러들이고 물기 가시는 가로수엔 준비된 적요가 홀가분하다 그의 벤치에는 새들 앉았다가 날아간다. 유엔 빌딩 옆 이끼 낀 돌담에 담쟁이 넝쿨 까칠해진 살결에 박혀 조그맣게 흔들리는 손가락들. 음악을 하려다 시를 쓴 사람의 집 전화통속에 들리는 불자동차 소리 5th 애비뉴 성당에 파이프 올간과 자지러지는 풍금소리에 뮤지엄마다 반 고흐와 샤갈의 노랑과 남빛의 휘장을 조용조용히 열고 몰래 치룬 장례에 숨어서 우는 달빛 하나의 외로움으로 떠나고 있다. © 김정기 2010.09.24

숨은 새 / 김정기

숨은 새 김정기 창공이 무섭다. 썩은 어둠을 두르고 작아지는 날개를 움직인다. 발톱에 찍히는 바람의 무늬 오그라들어 점 하나로 남는 공간. 숨어서 껴안는 작은 그림자들이 빛나고 우리가 함께 버렸던 하늘이 흙이 되었던 비밀을 일러주는 색깔들. 뒤꼍에서 들리는 노래 소리에 다시 자라는 날개가 꿈틀거린다. 달빛의 힘줄을 딛고서. © 김정기 2010.06.08

고양이가 사는 집 / 김종란

고양이가 사는 집 김종란 누군가 떠나는 것에 대해 말해주었으면 떠나보라고 말해주었으면 고양이는 집에 들어와 때론 기지개 펴며 창틀에 앉아 노곤한 해바라기 불현듯 어른대다 사라지는 뜬 소식에 졸음이 쏟아져 안경이 코밑에 걸린 안주인을 지켜보며 우아한 꼬리를 부드럽게 펼 수 있는 작은 공간 깃털에 젖은 밤이슬 털어내며 나뭇잎 사이를 날아올라 사고뭉치 이 장난감 새들 내가 바라볼 때 제발 최면에 걸리시라 안하무인 내 거드름에 푹 빠지시라 내가 떠났더라도 잊지 않기를! © 김종란 2009.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