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붉은 거북이 붉은 거북이 -- 마티스 그림 “붉은 실내, 푸른 테이블 위의 정물” 속 여자에게 (1947) 머리는 위쪽 양팔을 앞쪽으로 꽃병에 꽂힌 여린 식물 실내에 둥실 뜬 보름달 달 속 여자가 슬며시 웃는다 빨간 벽 푸른 테이블 언저리로 지직, 지지직 갈라지는 거북이 등짝 詩作 노트: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시치미를 뚝 따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해서 야수파(野獸派)라 불리는 마티스에게 거북이 한 마리를 선사한다. © 서 량 2023.11.08 마티스를 위한 詩 2023.11.08
|詩| 중간 박수 스토리 중간에 해피엔딩이 들어서지 못해요 -- 만화영화 '마지막 유니콘, The Last Unicorn' (1982) 해피엔딩은 미남미녀가 고초 끝에 뜻을 이루는 엔딩 -- A happy ending cannot come in the middle of the story -- 당신이 그리는 유니콘이 완성되기까지 빛의 굴곡은 대수롭지 않지 스토리 중간에 얼굴에 붕대를 감은 고흐 자화상을 마주할 수 있겠어? 저는 못해요 달도 보름달이 좋은데 나는 보름달을 보는 순간 박수를 친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보름달은 완벽해 달기운이 넘쳐흐르네 상대 없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래 독백은 싫어 밤하늘에 버려진 하현달이 제 마음을 떠나지 않고 있네요 박수 끝! 몸은 떠나도? © 서 량 2011.12.9 – 2021.07.08 詩 2021.07.08
|詩| 조팝나무, 봄을 맞다 조팝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말만 들었지 당신이 조팝나무, 조팝나무 하면 나는 왜 마음이 조급해지나 오래 전부터 조팝나무가 오밀조밀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과학적으로, 윤리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다 아무튼 나는 지금 조팝나무 건너편으로 보름달이 덜렁덜렁 굴러가는 소리를 듣는 있는 중이야 맛 있어요, 정말 맛있어요 하는 당신 목소리에 3도 화음이 들어간다 조팝나무가 봄밤 복판으로 납신납신 걸어 들어온다 해서 내 마음이 제아무리 조급해져도 죽자고 참는 수밖에 별 다른 도리가 없다 © 서 량 2011.05.23 – 2021.02.26 詩 2021.02.26
|컬럼| 63. 정신병이 달(月)에서 온다더니 'He is a lunatic'이라는 표현은 시쳇말로 어떤 사람이 '뿅갔다'는 뜻. 사람이 머리가 팽! 도는 순간 옆 사람이 잘 들으면 '뿅!' 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모양이다. 서구인들은 13세기경부터 사람이 미치는 것이 달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위의 표현은 한 사람의 정신상태가 달 모습이 바뀌듯 계속 변덕을 부린다는 뜻에서 비롯됐고 'lunatic'이 노골적으로 '미친 사람'이라는 의미로 변한 것은 1377년 고대 불어에서였다. 달이 바닷물을 밀고 당겨서 밀물과 썰물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해변을 휩쓸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겠지. 사람 몸 혈액의 소금 농도도 바닷물의 소금 농도와 같다. 저 거대한 바다를 뒤흔드는 달과 지구의 애틋한 견인력이 나와 당신의 적혈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2020.10.05
|컬럼| 207. 거짓 희망 2013년에 나온 'K-pop' 가수 송지은의 노래에 '희망고문'이라는 곡이 있다. 가사는 남자가 여자의 사랑에 대한 미미한 희망을 비정하게 배신하는 내용이다. 1990년대 한국 대학가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단어 '희망고문'은 인터넷 영어사전 'Urban Dictionary'에 이미 'hope torture'라 등록됐다. 2014년 4..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2014.05.04
새벽 보름달 / 윤영지 새벽 보름달 윤영지 어제 밤 보지 못한 보름달이 이른 새벽 회청색 하늘을 훤히 밝히고 있었어 어, 근데 왜 이렇게 반가운 걸까 그저 얼싸 끌어안고 울고 싶었지 머얼건 하늘 한 켠으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갈대밭에 외쳐대는 이발사가 집게손가락 구부리고 꼬드기며 한 눈 찡긋 입..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2.10.02
|詩| 무단출입*** 꿈이었나 봐 보름달보다 무거운 배 한 척이 개울물에 철벅철벅 떠내려 간다 사람이 한 명도 타지 않은 배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첨벙첨벙 물로 뛰어드는 연상작용과 아무 상관이 없는 조그만 배 한 척이 과자처럼 바삭바삭하게 물기 없는 배를 타고 싶었지 죄송하지만 저는 의견을 달리합.. 詩 2012.04.05
|잡담| 비내리는 추석 올해는 이상하게 추석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작년엔 추석이 실감이 났느냐 하면 작년에도 그랬지만. 솔직히 어렷을 적에는 추석하고 정월 대보름을 혼동했었지. 킥킥. 이건 별로 지성인이 될만한 자질 부족이었다고 말하면, 당신도 덩달아 킥킥 웃을래? 하필이면 미국 날짜로 추석날 .. 잡담, 수다, 담론, 게시 2009.10.05
|詩| 검정색 노래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아주 높은 음역에서 뛰노는 샛노란 어린이 합창 소리 들린다 변성기 이전 그 쟁그라운 목소리 빨간 꽃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나직하게 검정색 꽃 그림자만 달빛에 흔들리네 거짓말이 아니야 눈을 반만 뜨고 봐봐 당신 입술 연지처럼 부풀어오른 살짝 붉은 색이 감도는 검.. 詩 2009.09.21
|詩| 해변과 보름달* 강물이 벌판에 과묵하게 선(線)을 긋는 사이에 바다는 천근만근 육중한 입체감으로 지구를 제압한다네 바다와 강물은 어디쯤에서 합세를 했는지 파도가 흰 이빨을 들어내고 헤프게 헤프게 웃으며 해변을 파고드는 모습이 눈 간지러운 잔상으로 남는다네 저 요란한 파도 소리마저 귀에 .. 詩 2009.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