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is a lunatic'이라는 표현은 시쳇말로 어떤 사람이 '뿅갔다'는 뜻. 사람이 머리가 팽! 도는 순간 옆 사람이 잘 들으면 '뿅!' 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모양이다.
서구인들은 13세기경부터 사람이 미치는 것이 달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위의 표현은 한 사람의 정신상태가 달 모습이 바뀌듯 계속 변덕을 부린다는 뜻에서 비롯됐고 'lunatic'이 노골적으로 '미친 사람'이라는 의미로 변한 것은 1377년 고대 불어에서였다.
달이 바닷물을 밀고 당겨서 밀물과 썰물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해변을 휩쓸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겠지. 사람 몸 혈액의 소금 농도도 바닷물의 소금 농도와 같다. 저 거대한 바다를 뒤흔드는 달과 지구의 애틋한 견인력이 나와 당신의 적혈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지사다. 노련한 외과의사들은 보름 가까운 날 중요한 수술을 하지 않는다. 보름날이면 뜻밖의 출혈이 심하기 때문에.
'month'는 고대영어의 'mona'에서 파생된 말로 'moon'과 같은 어원이다. 1월, 한 달, 하는 '월'이나 '달'은 밤하늘의 달과 같은 말.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간을 구획하는 척도는 달에 기준을 두고 있다. 달의 모양새가 항구여일(恒久如一)하지 않고 자꾸 변한다는 뼈아픈 각성에서 당신과 나의 달력과 시간관념이 생겨난 것이다. 여자들의 생리주기가 달이 변모하는 스케줄과 일치한다는 것도 당신이 풀 수 없는 수수께끼 중에 하나. 그래서 월경을 순수한 우리말로 '달거리'라 한다.
달은 우리가 한밤에 맨 눈으로 눈물이라도 글썽이며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지구의 알뜰한 위성이다. 반면에 해는 눈살을 찌푸리고라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강렬한 존재. 우리는 강한 것을 무서워하고 접근하기를 꺼려한다. 당신은 달빛에 몸을 흠뻑 적실 수 있지만 따가운 햇볕에 오래 있으면 일사병에 걸리거나 살갗이 부르트리라. 달이 다정다감한 어머니의 심성이라면 해는 성미 하나 호랑이같이 무서운 아버지 기질이다. 그래서 우리는 해에게 떠들썩하게 요구하지 않고 달에게 은밀하게 속삭이며 소원을 빈다.
한자의 달 월(月)자는 반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완벽한 동그라미보다 길쭉하고 갸름한 사람 얼굴 모습에 우리는 한결 더 정을 쏟는다. 당신이 한가위를 경하하기 위하여 엊그제 정성스럽게 빚은 송편도 반달형이다. 그것은 반달에서 보름달로 변모하는 충일감을 예상하는 우리 선조들의 집단적 행위예술이었다.
그러나 서구의 달은 살기가 넘친다. 만월(滿月)이면 사람이 늑대로 변하는 전설이며 흡혈귀 드라큘라도 보름달 휘영청 밝은 밤에 관 속 깊은 잠에서 부스스 깨어나 사람의 피를 찾아 큼직한 박쥐날개를 펴고 밤하늘을 날아간다.
그리고 근래에 미국인들이 남을 깔보고 경멸하기 위하여 바지를 내리고 궁둥이를 들어내 보이는 행위를 뜻하는 동사, 'moon(궁둥이를 내보이다)'은 1968년에 대학생 속어로 사전에 처음 선을 보인 후 아직도 활발히 쓰이는 슬랭이다. 사람 볼기짝이 보름달처럼 둥글고 희뿌옇다는 의미에서 온 말이라나, 어떻다나. 'honeymoon(신혼여행)'을 직역해서 밀월여행이라 한다. 허나 아뿔싸, 달도 차면 기우나니! 꿀처럼 달콤하게 부풀대로 부풀은 신혼기간이 차츰 일그러진다는 부정적인 암시가 어원학적으로 깃들어진 아주 수상한 말이다.
자고로 사람 마음에 음기가 충만하면 정신이 이상해지는 법도 있거늘. 건전한 정신은 음과 양이 잘 조화를 이루었을 때 이른 아침 햇살처럼 우리들 마음에 생동감을 일으키는 힘찬 출발이 되거늘. 당신은 부디 한가위 보름달의 음기를 지나치게 받아들인 나머지 자칫 '뿅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노라.
© 서 량 2008.09.14
--뉴욕중앙일보 2008년 9월 17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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