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12

|컬럼| 5. 만족이 주는 슬픔

‘sad’는 ‘슬프다’는 말이다. 양키들은 이 말을 참 싫어 한다. 우리들이 슬픔을 찬양하는 것처럼 그들은 절대로 그렇게 슬픔을 미화시키지 않는다.  ‘sad’는 ‘만끽하다; 만족시키다’를 의미하는 ‘sate’와 그 어원이 같다. ‘sate’는 라틴어의 ‘satis’에서 유래했는데 ‘충분하다’는 뜻. 만족스럽다는 뜻의 ‘satisfy’는 ‘satis’의 끝에 ‘fy’만 붙인 말이다. 충분하면 만족스럽지만 만족은 슬픔의 서곡이다. 이 공식에 따르면 흥부전에서 가장 슬픈 사람은 놀부였다. 예수의 생애 마지막 12시간을 기록한 2004년도 영화 멜 깁슨의 (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도 로마병정이 예수를 고문할 때 ‘Satis!’ 라는 라틴어가 자주 나온다. 그때 영어자막은 ‘Enou..

플라스틱 나무 밑에 둔 심장 / 김종란

플라스틱 나무 밑에 둔 심장 김종란 *고도를 기다리며 슬픔을 선정한다 달콤한 슬픔 쌉쌀한 슬픔 아이스크림 두 손에 쥐고 대열을 빗겨 지나간다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온다 차오르는 시간 품어내고 품어내며 어김없이 뛰는 심장 플라스틱 나무 위로 해가 떠오른다 브람스를 선정한다 유연하게 침대에서 내려와 탈색된 거리 내달린다 심장은 달콤한 아이스크림 스르르 녹아 내리며 플라스틱임을 잊는다 기다리며 온기 없음을 합성이라는 걸 잊는다 *사무엘 베게트의 희곡 © 김종란 2009.11.30

|컬럼| 428. 사과를 하라니!

종종 병동에서 환자들이 치고 박고 싸운다. 보조간호사들이 덤벼들어 뜯어말린다. 아직 감정의 앙금이 가시지 않은 둘을 인터뷰한다. 누가 먼저 때렸냐? - “Who started it?” 이 질문은 병동환자들, 당신과 나같이 멋모르는 보통사람, 그리고 조석으로 뉴스를 제조해서 상대 정당에게 시비를 거는 정치인들이 늘 신경을 곤두세우는 부분이다. 둘은 평소에 서로 감정이 좋지 않은 관계다. 한쪽은 감성적이고 다른 쪽은 이론에 밝지만 화제를 바꿔가며 상대를 몰아붙이는 능력이 딸린다. 사태의 발단은 얌전한 이론파보다 대체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사나운 감성파에 있다. – “HE did!” 사과(謝過) 받기를 좋아하는 감성파가 이론파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이론파는 사과를 할 이유가 없지만 반대파의 압력을 이기지 못..

|컬럼| 355. 쾌지나 칭칭 나네 ~♪

‘쾌(快)’라는 발음하기 힘드는 우리말에 대하여 생각한다. 쾌청, 쾌적, 쾌차 같은 기분 좋은 말들이 떠오른다. 쾌락, 쾌감, 쾌재, 쾌속도 있다. 그런가 하면 상쾌, 유쾌, 흔쾌, 통쾌, 경쾌, 완쾌, 명쾌, 하는 식으로 말끝에 붙는 쾌자 돌림은 왜 그리 많은지. 이런 단어들은 다 한자어다. 순수한 우리말로는 즐거움, 기쁨, 시원함이 고작이라서 별로 다채롭지 못하다. 중국인들에 비하여 체질적으로 우리의 정서가 단순하기 때문일까. 정신분석에서 인간의 행동원칙을 쾌락원칙(pleasure principle)과 현실원칙(reality principle)으로 나눈다. 전자는 타고난 본능에 가깝고 후자는 자연환경과 사회적 압력에서 비롯된다. 쾌락은 질서를 무시하고 현실은 질서를 강요한다. 쾌락이 아이들 마음 속에..